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끝도 없는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에 ‘중동 전쟁’ 리스크까지 겹치면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호황을 누리던 완성차업계가 ‘피크 아웃’에 맞닥뜨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체마다 전기차 투자를 줄이고, 비용 절감 방안을 마련하는 등 ‘생존 전략’ 가동에 나섰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EV볼륨즈는 올해 세계 전기차 판매량을 기존 1430만 대에서 1377만 대로 하향 조정했다. 지역별로 중국의 경기 침체와 미국의 생산 지연, 유럽의 보조금 삭감 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여기에 비싼 차량 가격과 높은 이자율이 전기차 수요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폭스바겐은 최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올해 유럽의 전기차 주문량이 15만 대로, 작년 30만 대보다 50% 줄었다”고 밝혔다.

각 완성차 업체는 전기차 사업부터 재조정에 나섰다. 전기차 세계 1위 테슬라는 멕시코 공장 건설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1위 제너럴모터스(GM)는 미시간주 전기 픽업트럭 공장 가동을 1년 연기하기로 했다. 일본 혼다와 진행하던 저가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도 철회했다. 포드는 전기차 투자액 가운데 120억달러(약 16조2600억원)를 줄이기로 했다. 스텔란티스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내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 불참한다. GM, 포드에 각각 배터리를 공급하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도 ‘불똥’을 맞게 됐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당장 전기차 투자를 줄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전기차 시장 수요가 줄더라도 일시적일 뿐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 조정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전기차 시장에서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빈난새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