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예술이 될 때 : 알파벳을 춤추게 한 프란체스코 칸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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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한찬희의 너무 몰랐던 요즘 미술
칸줄로의 그림은 어딘가 독특하다. 1915년에 그린 <연극>이라는 작품은 간결한 형태와 구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선 하나로 무대를, 그 위에서 춤을 추는 배우를 나머지 선들로 표현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선이 아닌 음악에서 쓰이는 부호들과 ‘N’, ‘O’, ‘V’와 같은 알파벳임을 알 수 있다. 무대 바닥으로부터 떠있는 배우와 상체를 뒤로 젖힌 유연한 포즈가 역동성을 더하는데, 미래파(Futurisme) 작가로서 활동했던 칸줄로의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미래주의는 이탈리아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 1876-1944)가 <미래주의 설립과 선언>이라는 글을 1909년 2월 프랑스 주요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와 이탈리아의 ‘가제타 델에밀리아(Gazzetta dell’Emilia)’에 게재함으로써 그 시작을 알렸다. 선언문은 이탈리아 현대미술이 나아갈 방향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정작 프랑스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당시 활동하던 입체파 화가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미래주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화파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선언문에서 « 이탈리아를 교수, 고고학자, 박물관 가이드, 골동품상들로부터 해방시키겠다 »며 예술은 이제 고전과 같은 과거를 지향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마차를 뒤로 하고 자동차를 타기 시작한 것처럼, 예술도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주의 선언이 발표된 다음 해에 칸줄로는 마리네티를 만나 1913년 미래파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후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1871-1958)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과 로마에 위치한 스프로비에리(Sprovieri) 갤러리에서 열린 <제1회 미래파 독립전>에 참여했다. 회화 중심으로 전개됐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미래주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동참했다. 이러한 상호교류를 통해 회화와 조각을 비롯해 시, 음악, 연극, 건축, 사진 등 모든 예술 장르에 걸쳐 영향을 주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유럽 내 예술 분야 간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칸줄로의 작품은 시와 회화의 경계를 허문 대표적인 예다. 그는 글자를 이미지로 인식하고 문자와 부호, 악보에 표시된 악상기호를 비롯한 각종 기호를 회화적 요소로 사용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포폴로 광장의 많은 군중>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문자를 활용하는지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텍스트가 쓰여지는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열되었으며 각 알파벳들이 확장과 변형, 중첩과 반복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페이지에 가득 채워진 회화적 구성과 형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포폴로 광장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단순히 문자를 조형 요소로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칸줄로의 작품은 회화적인 동시에 서술적이다. 글자들의 색과 크기, 배열방식을 다르게 해 각 단어가 갖는 고유의 의미를 반영하고자 했다. ‘다툼’, ‘강압’, ‘품위 없는 자’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은 빨간색으로, ‘논밭’, ‘방목’, ‘먼지’는 초록색으로 쓰여 있다. 반면 ‘휘파람’, ‘자동차’, ‘바람’은 ‘F’나 ‘V’ 등을 여러 번 반복해 마치 의성어처럼 표현했다. 또한, 글자의 크기도 점점 작아지거나 커지게 함으로써 광장에서 나는 소리들을 시각화 하였다. 문자 그대로 해석되는 것을 넘어 시각적 요소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 표현 방식이 화면 전체에 역동성을 더하는데, 새로운 문명, 기술과 속도를 찬양하던 미래주의 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다. 칸줄로는 회화 작업도 꾸준히 이어 나갔다. 그가 그린 동료 마리네티의 초상화를 살펴보면 인상파의 면모가 드러난다. 특히 의자들과 책상에 불규칙적으로 일어나는 빛의 반사와 배경에 연기처럼 피어 오르듯이 거친 붓터치로 표현된 구름이 그렇다. 마리네티가 쓴 모자의 명암과 옷의 주름을 통해 칸줄로의 섬세한 회화 기법도 엿볼 수 있다. 칸줄로는 시와 회화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시도했다. 쉽고 가볍게 소비되던 글에 회화적 가치를 부여해 미래주의 운동의 전면에 내세웠다.그러면서도 미래주의 회화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여겨지는 조형적 역동성을 잃지 않았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탐구하고자 했던 칸줄로는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에 드나들며 다다이즘 작가들과 함께 활동하였고, 1924년에는 미래파와 결별을 선언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칸줄로의 작품은 시와 회화의 경계를 허문 대표적인 예다. 그는 글자를 이미지로 인식하고 문자와 부호, 악보에 표시된 악상기호를 비롯한 각종 기호를 회화적 요소로 사용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포폴로 광장의 많은 군중>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문자를 활용하는지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텍스트가 쓰여지는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열되었으며 각 알파벳들이 확장과 변형, 중첩과 반복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페이지에 가득 채워진 회화적 구성과 형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포폴로 광장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단순히 문자를 조형 요소로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칸줄로의 작품은 회화적인 동시에 서술적이다. 글자들의 색과 크기, 배열방식을 다르게 해 각 단어가 갖는 고유의 의미를 반영하고자 했다. ‘다툼’, ‘강압’, ‘품위 없는 자’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은 빨간색으로, ‘논밭’, ‘방목’, ‘먼지’는 초록색으로 쓰여 있다. 반면 ‘휘파람’, ‘자동차’, ‘바람’은 ‘F’나 ‘V’ 등을 여러 번 반복해 마치 의성어처럼 표현했다. 또한, 글자의 크기도 점점 작아지거나 커지게 함으로써 광장에서 나는 소리들을 시각화 하였다. 문자 그대로 해석되는 것을 넘어 시각적 요소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 표현 방식이 화면 전체에 역동성을 더하는데, 새로운 문명, 기술과 속도를 찬양하던 미래주의 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다. 칸줄로는 회화 작업도 꾸준히 이어 나갔다. 그가 그린 동료 마리네티의 초상화를 살펴보면 인상파의 면모가 드러난다. 특히 의자들과 책상에 불규칙적으로 일어나는 빛의 반사와 배경에 연기처럼 피어 오르듯이 거친 붓터치로 표현된 구름이 그렇다. 마리네티가 쓴 모자의 명암과 옷의 주름을 통해 칸줄로의 섬세한 회화 기법도 엿볼 수 있다. 칸줄로는 시와 회화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시도했다. 쉽고 가볍게 소비되던 글에 회화적 가치를 부여해 미래주의 운동의 전면에 내세웠다.그러면서도 미래주의 회화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여겨지는 조형적 역동성을 잃지 않았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탐구하고자 했던 칸줄로는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에 드나들며 다다이즘 작가들과 함께 활동하였고, 1924년에는 미래파와 결별을 선언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