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거행된 고(故) 지익주씨 7주기 추모식 영정 사진. /사진=미망인 최경진씨 제공.
18일 거행된 고(故) 지익주씨 7주기 추모식 영정 사진. /사진=미망인 최경진씨 제공.
7년 전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현지 경찰에 의해 납치·살해된 고(故) 지익주씨 유족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사건 진상 규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30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망인 최경진씨는 남편이 억울하게 살해된 경위와 이로 인해 겪는 아픔을 담아 박 장관에게 발송한 편지 내용을 공개했다.

최씨는 "제 남편은 집에서 현직 경찰들에게 납치돼 경찰청 내 주차장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뒤 화장터에서 소각됐고 유골마저도 찾을 수 없도록 화장실 변기에 버려졌다"면서 "이는 극악무도하고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저는 남편을 찾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증거를 수집했고 급기야 탐정까지 고용했다"며 "이후 신변 위협으로 숨어 지내며 재판을 준비했고 범인들의 거짓말을 들으면서 지옥 같은 세월을 보냈는데 이는 뼈를 깎고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고 호소했다.

필리핀 당국의 사건 대처가 '꼬리 자르기'로 일관됐다는 게 최씨의 지적이다. 또 범인 다섯명 중 두 명은 국가 증인으로 채택돼 석방되거나 지병으로 숨졌고, 이어진 재판에서 나머지 3명 중 2명은 무기징역이 선고됐지만 사실상 주범으로 지목된 전직 경찰 고위 간부는 무죄가 선고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재판 초기 범인들은 15명 정도였고 이 중에는 NBI(국가수사청) 고위직 간부도 있었지만 대개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범인은 5명으로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우울증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매일매일을 눈물로 보내고 있다"며 "남편의 억울함과 저의 아픔을 풀어주기 위해 한국 정부가 나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건 진상 규명과 보상이 꼭 필요한 이유는 한국민들이 쉽게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할 방패막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씨는 지난 2016년 10월 18일 앙헬레스 자택에서 필리핀 경찰들에게 납치돼 살해됐다. 최씨는 남편이 숨진 뒤 홀로 필리핀에 남아 사건 실체 규명과 범인 처벌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잔인하고 치밀한 범행 수법으로 당시 한인사회뿐 아니라 필리핀 사회도 충격에 빠졌다.

필리핀 경찰청 납치수사국(AKG)은 총 14명의 용의자를 가려내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이 중 5명만 인질강도·살인·차량 절도 등 혐의로 최종 기소했다. 이후 약 5년 8개월간 84차례에 걸쳐 심리가 진행됐는데, 이중 로이 빌레가스는 국가 증인으로 채택돼 2019년 1월에 석방됐다. 화장장 소유주인 헤라르도 산티아고는 코로나19로 사망했다.

법원은 지난 6월 열린 1심 판결에서 산타 이사벨과 제리 옴랑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이 주모자로 지목한 라파엘 둠라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당시 법정에 나온 최씨는 충격을 받고 혼절했다.

2012년 이후로 필리핀에서 발생한 한인 살해 사건은 총 57건이다. 사망자는 63명에 달한다. 하지만 정식 재판을 통해 실형이 선고된 것은 지씨 피살 사건이 처음이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