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바이어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제조업체에 요구하는 범위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색상구현, 디자인, 원단 소싱까지 의류 제조업체가 담당하는 추세입니다. 지난 몇 년에 걸쳐 바이어의 요구조건을 맞출 수 있는 대형 제조업자개발생산(ODM)업체 위주로 산업이 재편된 배경입니다.”(김익환 한세실업 대표이사 부회장)

코로나19로 기업 환경이 좋지 않았던 최근 3년간 한세실업은 베트남에 300억원(약 2400만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팬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과감한 투자 결단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글로벌 패션 ODM·주문자상표생산(OEM) 업계에서 고객사들의 요구가 한층 까다로워진 만큼, 코로나19동안 친환경 설비, 자동화 시스템, 근로자 생산효율 증대방안 등을 마련해둔 한세실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미국, 일본 등의 40개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베트남 호찌민 띠엔장(TG)법인은 11개 공장 중 일부를 이미 ‘고객사 전문공장화’했다. “철저히 맞춤형 생산을 추구하겠다”는 경영진의 의지다.
한세실업의 전 공장에서는 근로자에게 개인 단말기를 지급한다.(사진=한경제 기자)
한세실업의 전 공장에서는 근로자에게 개인 단말기를 지급한다.(사진=한경제 기자)

한세실업 최대 생산기지 TG법인

베트남의 경제도시 호찌민에서 남서쪽으로 약 60㎞ 떨어진 지역에 한세실업의 의류생산법인 TG법인이 있다. 2010년 설립된 이곳은 베트남 현지 의류 생산·수출의 전초기지다. 11만평(약 36만㎡) 부지에 공장 11동과 연구개발(R&D)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한세실업 전체 생산물량의 62%가 베트남 법인에서 나오는데, 그 중 TG법인 생산시설 규모가 가장 크다. 일 년에 4500만장의 의류가 생산된다.

26일(현지시간) 찾은 TG법인의 미국 A브랜드 전용 공장(8공장)은 ‘의류제조사업은 곧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높은 수준의 자동화를 보여줬다. 원단 보관, 봉제, 아이롱(다림질), 폴딩(의류를 개는 것), 포장, 출고 과정의 상당 부분에서 기계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작업자들이 본인이 맡은 공정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원단공장에서 가져온 원단은 기계가 3층 높이 선반에 적재해주고, 무인 자동배송로봇(AGV)은 원단을 작업장으로 알아서 전달한다. 한 공정이 끝나면 다음 공정으로 옷감을 자동으로 옮겨주는 ‘행거 라인’도 설치돼있다.
26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진행된 한세실업 기자간담회에서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이사 부회장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한세실업 제공)
26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진행된 한세실업 기자간담회에서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이사 부회장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한세실업 제공)
최근에는 자동 재단기도 도입했다. 의류 제품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원단의 로스율(손실비율)을 줄이기 위함이다. 도면을 입력하면 두꺼운 플리스 원단도 최대 70장까지 한 번에 재단할 수 있다.

회사측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8공장의 자동화 공정률은 현재 50% 수준까지 올라왔다. 자동화를 통해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은 약 15% 향상된 것으로 파악된다. 향후 자동화율을 8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자동화율을 50%까지 끌어올린 결과, 한세실업 TG법인 공장 작업자들의 생산성도 향상됐다. 주머니를 자동으로 달아주는 포켓머신 도입 이후 근로자 한 명이 시간당 300장 이상을 작업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2.5명당 125장을 생산에 그쳤다고 한다.(사진=한경제 기자)
자동화율을 50%까지 끌어올린 결과, 한세실업 TG법인 공장 작업자들의 생산성도 향상됐다. 주머니를 자동으로 달아주는 포켓머신 도입 이후 근로자 한 명이 시간당 300장 이상을 작업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2.5명당 125장을 생산에 그쳤다고 한다.(사진=한경제 기자)
또다른 고객사 전용공장인 1공장은 일본 B브랜드에 납품하는 의류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꼼꼼한 검수를 강조하는 일본 기업의 특성에 맞춰 다섯 단계의 검사를 통과한 제품만 출고되도록 설계했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의 특성에 맞춰 생산 설비와 시스템을 개량했다”며 “향후 11개 공장 모두 고객사 전용공장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친환경 기준 맞추자” ESG 강조

한세실업의 이같은 투자는 의류산업의 특성과 관련이 깊다. 김익환 부회장은 “의류제조업은 몇 센트 차이로 수익과 손해가 결정나는 산업”이라며 “세부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세실업은 생산효율 관리를 위해 전 공장 근로자들에게 개별 단말기를 지급한다. 근로자는 화면을 통해 일 생산 목표치, 현재 생산량,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볼 수 있다.
베트남 TG법인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봉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단에 설치된 제품 자동 운반장치 '행거라인' 덕분에 작업자들은 본인이 맡은 봉제 작업만 수행하면 된다.(사진=한경제 기자)
베트남 TG법인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봉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단에 설치된 제품 자동 운반장치 '행거라인' 덕분에 작업자들은 본인이 맡은 봉제 작업만 수행하면 된다.(사진=한경제 기자)
공정을 세분화해 근로자의 공정 전문성도 높였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개인별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생산 공정이 길수록 병목현상이 심화된다”며 “성과에 따라 저효율자들은 사흘 간 별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고려한 생산을 요구하는 바이어들이 늘어나면서 친환경 설비 및 공정도 들였다. 2019년 업계 최초로 3차원(3D) 디자인팀을 구성해 바이어들에게 실제와 동일한 수준의 샘플을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샘플 원단 폐기물이 줄어들고 고객사로 샘플을 배송하기 위한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누렸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과거에는 일 년에 생산되는 샘플만 1만장이었다”며 “3D 샘플을 통해 타겟, 갭 등 주요 고객사의 샘플 생산량을 70%이상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세실업이 2013년 인수한 원단제조회사 C&T법인은 원단 염색 과정에서 전기와 물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기계를 점진적으로 도입중이다.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 C&T법인 3공장에서는 보일러 연료로 바이오매스만 사용할 계획이다.

호찌민=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