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트럼프 '뼈 때리고' 간 펜스
미국 현역 정치인 중 보수주의 원칙에 가장 투철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이다. 그의 정치 슬로건은 “나는 공화당원이기 이전에 보수주의자이며, 보수주의자이기 이전에 기독교인”이다. 낙태, 동성결혼과 타협할 수 없는 그는 인디애나 주지사 시절 동성결혼과 관련해 본인이 직접 수십 건의 관련 재판 변론을 맡았을 정도다.

6·25전쟁에 참전해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부친을 둔 펜스는 반공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에도 확고하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그를 평화쇼의 들러리로 세우려고 했다가 망신살이 뻗쳤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온 펜스는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동생 김여정과의 만남을 ‘정중하게 강요’했지만 이를 피했다. 같이 사진 찍힐 것을 꺼려 리셉션장에 일부러 지각하고, 개막식에서 뒷자리로 배정해 놓은 김여정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북한에는 거대한 상징적인 승리를 의미하겠지만 내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는 ‘펜스 룰’이 유행어가 됐다. 펜스는 자신의 부인이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서 식사하지 않고, 부인이 동석하지 않은 모임에서는 술도 마시지 않는다. 이런 자기 관리의 철칙을 미투 바람이 불기 훨씬 전인 2002년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그는 미국 복음주의의 대부인 고(故)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원칙을 따른 것인데, 후일 펜스 룰로 더 유명해졌다.

내년 미국 대선에 공화당 경선 후보로 나섰던 펜스가 사퇴를 발표하면서 유력 후보인 트럼프에게 ‘뼈 때리는’ 한마디를 남겼다. “링컨이 말했듯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끌어낼 수 있고, 미국을 점잖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을 뽑아 줄 것을 호소했다. 펜스가 트럼프의 대선 불복 동조 압력을 거부하면서 둘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됐다. 펜스는 정치 초년생 때 정치자금 편법 유용과 흑색 선거 운동 사실을 고백하는 글을 지역 신문에 기고한 뒤 단 한 번도 네거티브 캠페인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 최초의 머그샷 장본인인 트럼프는 91개 위법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인들의 도덕성과 상식에 대한 판단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