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연구개발(R&D) 예산 급감을 둘러싼 논쟁이 분분한 가운데 국회예산정책처가 ‘2024년 예산안 총괄분석’ 보고서를 통해 내놓은 진단은 주목할 만하다. ‘대안 없이 깎은 예산’이 있는가 하면 ‘더 깎아야 할 방만예산’도 여전히 많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어서다.

보고서에는 ‘R&D 예산 나눠먹기’라며 무조건 삭감을 주장하는 여당이 참조할 대목이 많다. 예정처는 R&D 예산이 법정 기한을 넘겨 확정됐다고 지적했다.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뒤늦게 ‘전면 재검토 방침’이 정해지는 바람에 법정기한(6월 말)보다 2개월 늦게 배분액이 확정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13개 R&D사업이 조기 종료되고, 17개는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돼 기존 투자비가 성과 없이 매몰비용화하는 데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졸속’으로 단정하지 않았지만 손질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글로벌 경쟁력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무작정 선동하는 야당이 뜨끔해야 할 내용도 수두룩하다. 비효율사업에 대한 예산 삭감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범부처 차원의 대규모 사업인 국가신약개발은 올 R&D 예산 집행률이 54.3%(9월 말 기준)로 대규모 불용이 예상되는데도 예산은 과다 편성됐다는 게 예정처 지적이다. 대통령의 ‘카르텔 타파’ 요구에 사업 분류를 ‘R&D’에서 ‘비(非)R&D’로 바꾼 ‘무늬만 삭감’ 사업도 41개(예산 1조88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R&D 전문기관이 받은 정부 출연금 16조3450억원 중 2조5463억원(15.6%)이 미집행 잔액이다. 대북사업가들이 연구비를 타간 엉뚱한 사례도 넘친다. 이런 나눠먹기·뿌리기식 R&D 예산 집행은 또 다른 재정 퍼주기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예정처의 지적을 찬찬히 살펴보고 향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반영할 것은 반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