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의 장기화로 신흥국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하고 있다. 신흥국 기업이 찍은 달러·유로화 표시 채권 가운데 4000억달러(약 543조원)어치가 내년에 만기를 맞는데, 이 중 부실기업이 채무불이행(디폴트)하거나 파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흥국 투기 등급 채권 상환에 적신호

블룸버그는 29일(현지시간) “미국 국채 금리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치솟는 등 차입 비용이 급증하면서,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필요한 자금 가운데 10분의 1가량만 롤오버(만기 연장)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이어 “내년 회사채 만기가 도래할 때 기업의 차환 문제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어려움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고금리 정책을 이어가면서 기업 자금 조달 시 이자율의 기준이 되는 국채 금리가 높아졌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지난 27일 연 4.843%를 기록했다. 앞서 미국 국채 10년 만기 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7년 이후 최고치인 연 5%를 돌파하기도 했다. 그 결과 미국 국채 금리에 신용 위험을 반영해 산정하는 달러 표시 회사채 금리도 상승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신흥국 기업들의 회사채 중 2024년 만기가 돌아오는 달러 및 유로화 표시 채권 규모는 약 4000억달러다. 2025년 만기인 달러 및 유로화 표시 채권 규모도 3170억달러로 예상된다. 향후 2년간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규모만 7170억달러(약 974조원)에 이른다. 이 채권 대부분은 투자 등급이지만, 투기 등급 채권인 이른바 정크본드가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룸버그는 “앞으로 2년간 만기가 도래하는 신흥국 정크본드 규모가 1100억달러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2년내 1000조 '빚 폭탄'…신흥국 기업 초비상
블룸버그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 신흥국 시장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디폴트와 파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기업들은 높은 이자율을 감당할 수 있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향후 2년간 리파이낸싱(재융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독일 유니온인베스트먼트의 신흥시장 기업 부채 책임자 세르게이 데르가체프는 “특히 중국과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크라이나 등의 기업 일부가 현재 환경에서 리파이낸싱에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두 자릿수 이자율까지…부담 가중

일부 신흥국 기업은 고금리를 감수하며 회사채를 최근 발행했다. 회사채 금리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례로 두바이에 본사를 둔 오일·가스 시추업체 셸프드릴링홀딩스는 지난달 리파이낸싱 채권 11억달러어치를 연 10.125%의 금리로 발행했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신흥국 기업들은 260억달러(약 35조원) 규모의 부채를 제때 상환하지 못했다. 2021년(93억달러), 2020년(95억달러) 대비 급증했다. 이들 기업이 지난해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 긴축이 시작된 후 현재까지 상환하지 못한 금액은 총 800억달러다.

싱가포르에 있는 뱅크줄리어스베어앤코의 신흥국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 아르노 부에는 “신흥국 기업들은 현지 시장에서는 더 나은 수준으로 리파이낸싱할 수 있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S&P글로벌의 애널리스트들은 향후 2년간 신흥국 저신용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