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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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사납금을 깎아주는 대신 추후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이를 돌려준다는 취지의 노사 약정이 있어도, 사업주가 추후 지급하는 임금에서 함부로 공제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임금 전액 지급의 원칙'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취지다.

31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춘천지법 제1민사부(재판장 조미연)는 택시기사 A씨 등 3명이 택시회사 B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임금 공제분을 반환토록 한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강원도 춘천의 한 택시업체에서 기사로 일하던 A씨 등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0년 4월 승객이 크게 줄면서 회사에 매일 납입해야 하는 사납금 17만6000원을 맞추기 어려워졌다. 이에 노사 간 임금협상을 통해 사납금을 2만원 줄이는 대신 나중에 코로나 지원금을 받을 경우 반환한다는 취지의 합의가 이뤄졌다.

노조 합의 이후 A씨 등 3명의 기사는 두 달에 걸쳐 약 40만원씩 각각 사납금을 감액받았지만, 코로나19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그해 8월 회사를 퇴직하게 됐다.

회사 측은 A씨 등의 임금을 정산하면서 “사납금 감액분은 회사가 미리 지급해준 ‘선급금’”이라며 공제했다. 하지만 A씨 등은 “정부로부터 코로나 지원금을 받지 못했으므로 반환할 이유가 없다”며 임금 지급을 요청했다.

B사는 소송 과정에서 “기사들이 코로나 지원금을 못 받을 경우 선지급한 금액을 반환하거나, 회사 측이 선지급한 금액을 임금에서 임의로 공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합의에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 합의는 코로나 지원금 지급을 전제로 한 조건부 사납금 인하인데, A씨 등이 코로나 지원금을 받기 전에 퇴사함으로써 조건이 이뤄지는 것을 방해했다”고 항변했다.

반면 A씨 등을 대리한 공단은 “노사 간 합의는 코로나 지원금 수령을 전제로 했을 뿐, 미수령할 경우에 임금에서 공제한다는 내용은 없다”고 맞섰다.

회사 측이 제출한 노사 임금협상 회의록에도 지원금 미수령과 관련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측은 "정부의 법인택시기사 지원금 지급 신청 공고일 이전에 퇴직했기 때문에 지원금 수령 자체가 불가능했다"고도 주장했다.

1심은 택시기사 A씨 등의 손을 들어줬고, 회사 측이 항소했으나 항소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근로기준법 제43조 1항에 따르면 임금은 직접 근로자에게 전액 지급해야 하며 일부를 공제하지 못함이 원칙”이라며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을 경우 등 예외가 있지만, 그 예외를 넓게 인정하면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저해할 수 있어서 (예외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합의 내용은 근로자들이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경우 선지급금을 반환하는 것"이라며 "이를 지원금을 못 받는 경우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불리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또 "지원금을 받기 전에 퇴직한 게 신의칙에 반하는 조건 성취 방해행위로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A씨 등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공단 소속 강민희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은 노사합의와 관련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지 않도록 엄격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합의 내용을 확장해석해 선지급금을 임금으로 보거나 함부로 공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