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을 기념한 상을 받게 돼 영광입니다. 선생의 <시장과 전장>을 읽고 6·25전쟁의 이후 한국인들의 삶을 상상하곤 했죠. 시공간을 초월한 고통과 사랑의 감정을 전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69·사진)는 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1954년 오스트리아 벨스에서 태어난 그는 빈 대학에서 철학과 비교인류학을 전공했다. 월간지 '호외' 등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다가 1982년 <찬란한 종말>로 등단했다.
제1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토지문화재단 제공
제1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토지문화재단 제공
란스마이어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함께 오스트리아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통한다. 엘리아스 카네티상, 프란츠 카프카상 등 국제문학상만 20개 넘게 받았다. 그의 작품은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됐다.

그의 작품은 주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인물을 그린다. <빙하와 어둠의 공포>는 19세기 말 북극탐험대를, <최후의 세계>는 고대 로마시인 오비디우스의 행적을 좇는 인물을 내세운다. 다양한 개인들의 여정을 통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넌지시 암시한다.
제1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토지문화재단 제공
제1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토지문화재단 제공
작가는 실제로도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자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을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뿐 아니라 네팔 스리랑카 등 아시아 곳곳을 찾았다. 그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만난 경험을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했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등 현재진행형인 전쟁과 관련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미지나 영상만으로도 전쟁의 참상을 전할 수 있지만, 희생자들의 깊은 고통을 사람들에게 더 잘 보여주고 이해시키는 데는 문학만한 게 없다"고 했다.
제1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작가가 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안시욱 기자
제1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작가가 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안시욱 기자
박경리문학상은 <토지>를 집필한 고(故) 박경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된 문학상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국내 1호 국제문학상'이다. 토지문화재단과 강원도 원주시가 공동 주최한다. 상금은 1억원.

강자모 세종대 명예교수 등 7명의 심사위원회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탄탄한 문학적 서사를 창조해내는 작가"라며 "뛰어난 상상력으로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혼합해 현실의 이면을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양한 메시지와 탁월한 문체로 소설의 존재감을 상기시키며 문학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