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신사협정은 반유대인 감정을 당연시하는 사회 저변 무언의 합의를 뜻한다. 외교, 법률관계 등에서 통용되는 신사협정은 성명, 선언 등 문서화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고 조약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법적 강제성이 없다 보니 위반 시 벌칙도 없다. 상호 간 신뢰가 그 기반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더라도 피해국은 보복 조치로 대응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 “신사협정에 준하는 성격에 불과하고, 조약으로 볼 수 없다”고 규정한 바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 신사협정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07년 정당 대표들은 투명한 대선을 치르자며 자금내역 공개, 지역주의·금권 공세 금지 등의 협약을 맺었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은 ‘원팀 협약식’을 하고 네거티브 공방 진화에 나섰으나 싸움은 더 격해졌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회 회의장 내 피켓 부착과 고성·야유를 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어제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때 본회의장 앞에서 단체로 ‘민생이 우선’ ‘국정기조 전환’ 등이 적힌 피켓 시위를 벌였다. 민주당은 회의장 밖이어서 신사협정 위반은 아니라고 하지만, 상호비방으로 품격을 떨어뜨리지 말자는 그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악수를 청한 윤 대통령 면전에 “그만두시라”고 하고, 외면한 의원도 있었다. 이번에도 말만 앞세우고 신의는 없었던 모양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