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민생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국무위원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대통령이 서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보듬는 것은 마땅하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고금리로 인한 고통이 마치 은행 탓인 것처럼 오도할 수 있는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 그의 발언과 함께 횡재세를 통한 초과이익 환수 논란이 다시 부상하는 것은 더욱 우려스럽다. 정치권에선 유럽 각국이 도입한 초과이윤세 등을 거론하며 횡재세 도입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징벌적 세금이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침해한다는 사실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은행에 쏟아지는 질타는 자초한 면이 크다. 5대 은행의 누적 이자 이익은 올해 3분기 기준 사상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다. 금리 상승기에 예금 금리는 천천히 올리고 대출 금리를 더 빠르게 올리는 식으로 ‘이자 장사’를 해 폭리를 취했다는 비난이 나온다. 이런 돈으로 지난해 1조3000억원 이상의 성과급 잔치를 벌여 매를 벌었다. 외환위기 때 국민 세금으로 회생한 은행들이 서민의 고금리 고통을 덜어주기는커녕 과점에 따른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이익 극대화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눈총을 받을 만하다.

그렇더라도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을 강조하며 팔을 비틀고 상생을 명분 삼아 지원을 강압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정부의 잦은 시장 개입이 부작용을 키우는 현실 아닌가. 당국이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라’고 인터넷은행에 요구하면서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금리가 저신용자 대출보다 높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집값 연착륙을 꾀한다며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을 대거 풀고, 은행 대출 금리를 억누른 것은 가계대출 증가를 부채질했다. 시장을 거스르는 개입은 민간 자율을 훼손하고 시장을 왜곡해 결국 역풍을 맞는다. 선한 의도로 포장한 포퓰리즘은 더욱 그렇다. ‘은행 종노릇’을 한다는 소상공인 원성이 높다고 해서 은행에 ‘정부 종노릇’을 강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