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31일 국회 시정연설은 민생과 건전재정, 약자 보호, 개혁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해 확보한 재원으로 취약계층과 서민을 두텁게 지원하고, 과감한 개혁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개혁’을 14차례, ‘재정’을 13차례, ‘미래’를 11차례 언급했다.

건전재정 강조한 윤 대통령 "약자 보호·성장동력 확보에 예산 더 투입"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는 건전재정”이라며 “건전재정은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 없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건전재정은 대내적으로는 물가 안정에, 대외적으로는 국가신인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 총지출 규모는 656조9000억원인데, 이는 전년 대비 2.8% 증가한 수준이다.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윤 대통령은 “모든 재정사업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 예산 항목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는 지출, 불요불급하거나 부정 지출이 확인된 부분을 꼼꼼하게 찾아내 지출 조정을 했다”며 “이를 통해 마련한 재원은 국방, 법치, 교육, 보건 등 국가 본질 기능 강화와 약자 보호 그리고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더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재원을 사각지대 및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하겠다며 △생계급여 지급액 인상 △발달 장애인에게 1 대 1 전담 서비스 제공 △자립준비 청년 수당 인상 △소상공인 저리 융자 제공 등의 항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어려움을 더 크게 겪는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녹록지 않다”고 진단했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고 있고, 올해 세계 교역은 유례를 찾기 힘든 0%대 증가율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글로벌 안보 리스크까지 겹쳐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경제의 침체에 따라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성장세도 둔화되고 서민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정부는 각별한 경각심을 가지고 거시경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가운데 경기 회복과 민생 안정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연구개발(R&D) 예산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직접 설명했다. 정부의 예산안 발표 이후 과학기술계에서는 R&D 예산이 지나치게 삭감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R&D 예산은 2019년부터 3년간 20조원 수준에서 30조원까지 양적으로 10조원이나 증가했지만,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질적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국가 R&D 예산은 민간과 시장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하기 어려운 기초 원천 기술과 차세대 기술 역량을 키우는 데 써야 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하게 늘어난 예산을 정리해 미래를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원천 기술, 차세대 기술, 최첨단 선도 분야에 대한 국가 재정 R&D는 앞으로도 계속 발굴, 확대해 미래 성장동력을 이끌겠다”며 “R&D 예산은 향후 계속 지원 분야를 발굴해 지원 규모를 늘릴 것이지만, 일단 이번에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3조4000억원은 약 300만 명의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데 배정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최근 국가 재정 R&D 지출 조정 과정에서 제기되는 고용불안 등의 우려에 대해서는 정부가 세심하고 꼼꼼하게 챙기고 보완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국가재정법, 회계부정 방지를 위한 보조금방지법,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산업은행법, 우주항공청 설립을 위한 우주항공청법 등의 조속한 처리도 당부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