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 첫 번째)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두 번째)가 1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별관에서 열린 ‘제2회 한은-대한상의 공동세미나’에 참석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축사에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 첫 번째)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두 번째)가 1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별관에서 열린 ‘제2회 한은-대한상의 공동세미나’에 참석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축사에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1일 “국가투자지주회사를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민간 기업이 투자하기 어려운 고위험·고성장 첨단기술 분야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마중물 투자를 해달라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과 유럽도 신기술을 보호하려는 태도가 있다”며 “제재를 피하기 위해 구조를 잘 짜야 한다”고 했다.

○“역BTL 방식 도입”

최 회장은 이날 대한상의와 한은이 공동으로 주최한 ‘글로벌 무역파고 어떻게 극복하나’ 세미나 환영사에서 이 같은 제안을 내놨다. 그는 ‘역(逆)임대형민자사업’(리버스 BTL) 방식으로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분야에 정부가 먼저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가 주도로 투자한 장치와 공장 등을 민간에 위탁 운영하는 방식으로 고위험·고성장 첨단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이에 대해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인내 자본 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기조연설에서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시장에 맡겨두면 신기술의 발전이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하지는 않는다”며 “정부의 지원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이 총재는 국가가 직접 투자하는 방식은 통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국유기업에 대한 반발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며 “간접적으로 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수출 주도 경제인 한국이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봤다. 최 회장은 “WTO 체제에 있던 하나의 세계 시장이 다 쪼개지는 상황”이라며 “이 쪼개진 공급망 시장에서는 수출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국가를 배제하고 제품을 생산하게 되면서 더 이상 값싼 제품을 만들기 어려워졌다”며 “시장별 ‘솔루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에는 세계 시장에 통용되는 자동차와 반도체 등의 제품을 대량으로 싸게 만들어 수출했지만 앞으로는 다른 각도로 시장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경제 블록화가 심화해 글로벌 수출이 4%가량 감소할 경우 한국 수출은 두 배가 넘는 10% 정도 급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가 걱정되는 상황”

세미나에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도 논의됐다. 이 교수는 “저성장, 소득과 부의 양극화, 물가 불안정 등 삼중고에 처한 한국 경제에 고금리, 전쟁 그리고 지경학적 분열 등 퍼펙트 스톰(복합위기)이 몰려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국제 유가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내년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만 돼도 한은의 예측이 많이 변할 수 있다”며 “미리 가정해서 할 수는 없지만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당초 유가를 배럴당 84달러로 가정하고 내년도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2.4%(전년 대비)로 전망했다. 최근 상황을 반영해 유가 전제를 바꿀 경우 한은이 이달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에서 물가 전망치도 높아질 수 있다.

이 총재는 “물가가 생각대로 안정되다가 8~9월 유가 변동이 발생하면서 걱정되는 상황”이라며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뉴스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란 개입 등이 없으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테러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리스크가 글로벌하게 커지는 부분이 우려된다”고 했다.

기업의 탈중국 움직임도 이슈였다. 이 교수는 “새로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중국 대신 다른 곳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이미 중국에 진출한 곳이라면 비용이 너무 크다”며 “산업과 기업 경쟁력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세미나에 참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게 “국내 기업이 중국에서 빠져나오고자 할 때 세금을 포함해 법적인 문제가 많다”며 “체계적으로 엑시트(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