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어느 왕국 악단이 더 뛰어나냐"…이 경쟁이 모차르트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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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뉴진스와 모차르트
300개 왕국 공존한 신성로마제국
귀족들 '체면 유지' 위해 예술 지원
모차르트·베토벤·하이든 등 거장 탄생
美관객 사로잡은 韓아이돌 '뉴진스'
21세기 세계화 시대가 낳은 행운아
300개 왕국 공존한 신성로마제국
귀족들 '체면 유지' 위해 예술 지원
모차르트·베토벤·하이든 등 거장 탄생
美관객 사로잡은 韓아이돌 '뉴진스'
21세기 세계화 시대가 낳은 행운아
생전에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지난 8월 미국 시카고 초대형 록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7만 관중을 쥐락펴락하며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준 걸그룹 ‘뉴진스’ 이야기다. 세 번 놀랐다. 중간중간 관중과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무대 매너가 당당해서, 그리고 도무지 우리나라 여자아이들 같지 않아서(한 명은 호주, 베트남 이중 국적이지만 뭐). 일찍이 선각 이수만 선생께서 고등학생 시절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을 보며 “외국 가수에게 한국 팬들이 열광하는 것이 가하다면 그 역 또한 불가할 것이 없지 않은가” 각오를 다지신 지 반세기, 그리고 그걸 실현하겠다고 클론과 H.O.T의 손을 잡고 그것도 외국이라고 중국 음악 시장으로 출격하신 지 불과 20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 아이돌이 빌보드 차트를 안방 드나들 듯하는 게 당연해 보이는 10대들에겐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겠지만 나 같은 ‘아재’ 입장에서는 뉴진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경천동지할 일이다.
예술에 필요한 게 재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상에 재능만큼 흔한 게 없다. 그리고 더 흔한 게 실패한 재능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 예술을 하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운은 사람과 때다. 마이클 잭슨이 200년 전 미국 남부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라. 그저 재롱 잘 떠는 ‘검둥이’ 취급받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 운도, 활동했던 시기도 죄다 나빴던 게 모차르트다. 신을 찬미하는 게 음악 예술가들의 유일한 활동 영역이었던 중세가 저물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세속 음악이 종교 음악과 헤어지는데 이어지는 바로크 시대를 지나 고전주의에 들어서면서 음악 시장은 교회, 궁정 그리고 시민 계급의 문화로 세분화된다. 고전음악 3인방이 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다. 하이든은 음악하는 하인이었다. 두 가문을 섬겼고 궁정악사라는 타이틀로 만족해야 했다. 베토벤은 자유 예술가였다. 시민 계급이 성장한 덕분에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중간에 낀 모차르트는 죽도 밥도 아니었다. 창작의 방향을 제시하는 귀족이 너무 싫었지만 내내 그들의 호의에 기대면서 살아야 했다. 엄청난 인적, 재정적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오페라로 모차르트가 부와 명예를 얻은 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유명세를 유지하자니 귀족들의 취향에 맞춰야 했고 자기 음악을 하자니 시민 계급은 아직 음악에 지갑을 열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모차르트 내외는 사치가 없으면 못 사는 사람들이다.
잘나가던 시절 모차르트의 재정은 어느 정도였을까. 평생을 두고 증오했던 잘츠부르크 대주교에게 묶여 있을 때 월급이 500플로린이었다. 고위직인 궁정 고문관 연봉이 4000플로린이었으니 연봉 6000플로린의 모차르트는 그보다 급이 높은 월급쟁이였다. 요새 돈으로 치면 1억8000만원 정도의 고소득자였지만 모차르트 내외는 월세가 480플로린이나 하는 53평짜리 집에서 살았다.
생활비, 당연히 부족하다.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모차르트의 편지를 보면 빠지지 않는 게 “신곡을 만들면 갚을 테니 돈 좀 빌려 달라”는 얘기였다. 돈에 매인 천재 모차르트는 그렇게 재능을 돈과 맞바꾸다 죽었다. 베토벤은 어땠을까.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베토벤은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나는 이제 사람들과 흥정하지 않아. 내가 요구하면 그들은 지불하지.” 안쓰러워서 내가 다 눈물이 난다. 모차르트가 꿈에서라도 해보고 싶었던 말이었다.
앞사람부터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스물다섯 살 차이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열다섯 살 차이다. 모차르트가 15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혹은 15년만 더 살았어도 돈 걱정 없이 교만 떨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에게는 때가 중요하다. 뉴진스가 2022년에 활동을 시작했으니 지금의 자리인 것도 마찬가지겠다.
여기에서 사소한 의문 하나.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어쩌자고 신성로마제국이라 불리던 지역에서는 이렇게 많이 등장한 것일까. 중세 동화에 왕자와 공주가 흔하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 지역이 300여 개의 작은 왕국으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이다(왕국마다 왕자와 공주를 10명씩만 잡아도 3000명이다. 왕자와 공주가 툭하면 길에서 만나도 하나도 안 이상하다).
이들은 체면 유지를 위해 고용 음악가들로 이뤄진 관현악단을 보유했고 도시의 위상을 놓고 서로 질시했다. 자신이 속한 궁정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음악가들은 라이벌 궁정 소속 아티스트들과 피나는 경쟁을 벌여야 했으니 음악 수준이 매일 다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찌감치 절대 왕정이 확립돼 오직 한 사람의 취향만 저격하면 그만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2023년 대한민국은 김구 선생이 그토록 갈망하던 문화강국이 됐다. 남북한 체제 경쟁은 경제가 끝이 아니다. 문화가 체제 경쟁의 마지막 라운드다. 딸 데리고 다니며 핵무기 자랑하는 지도자 동지에게 한말씀 올린다. “뚱땡이, 보고 있냐? 너네는 뉴클리어밤 있지? 우리는 뉴진스 있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예술에 필요한 게 재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상에 재능만큼 흔한 게 없다. 그리고 더 흔한 게 실패한 재능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 예술을 하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운은 사람과 때다. 마이클 잭슨이 200년 전 미국 남부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라. 그저 재롱 잘 떠는 ‘검둥이’ 취급받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 운도, 활동했던 시기도 죄다 나빴던 게 모차르트다. 신을 찬미하는 게 음악 예술가들의 유일한 활동 영역이었던 중세가 저물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세속 음악이 종교 음악과 헤어지는데 이어지는 바로크 시대를 지나 고전주의에 들어서면서 음악 시장은 교회, 궁정 그리고 시민 계급의 문화로 세분화된다. 고전음악 3인방이 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다. 하이든은 음악하는 하인이었다. 두 가문을 섬겼고 궁정악사라는 타이틀로 만족해야 했다. 베토벤은 자유 예술가였다. 시민 계급이 성장한 덕분에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중간에 낀 모차르트는 죽도 밥도 아니었다. 창작의 방향을 제시하는 귀족이 너무 싫었지만 내내 그들의 호의에 기대면서 살아야 했다. 엄청난 인적, 재정적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오페라로 모차르트가 부와 명예를 얻은 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유명세를 유지하자니 귀족들의 취향에 맞춰야 했고 자기 음악을 하자니 시민 계급은 아직 음악에 지갑을 열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모차르트 내외는 사치가 없으면 못 사는 사람들이다.
잘나가던 시절 모차르트의 재정은 어느 정도였을까. 평생을 두고 증오했던 잘츠부르크 대주교에게 묶여 있을 때 월급이 500플로린이었다. 고위직인 궁정 고문관 연봉이 4000플로린이었으니 연봉 6000플로린의 모차르트는 그보다 급이 높은 월급쟁이였다. 요새 돈으로 치면 1억8000만원 정도의 고소득자였지만 모차르트 내외는 월세가 480플로린이나 하는 53평짜리 집에서 살았다.
생활비, 당연히 부족하다.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모차르트의 편지를 보면 빠지지 않는 게 “신곡을 만들면 갚을 테니 돈 좀 빌려 달라”는 얘기였다. 돈에 매인 천재 모차르트는 그렇게 재능을 돈과 맞바꾸다 죽었다. 베토벤은 어땠을까.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베토벤은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나는 이제 사람들과 흥정하지 않아. 내가 요구하면 그들은 지불하지.” 안쓰러워서 내가 다 눈물이 난다. 모차르트가 꿈에서라도 해보고 싶었던 말이었다.
앞사람부터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스물다섯 살 차이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열다섯 살 차이다. 모차르트가 15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혹은 15년만 더 살았어도 돈 걱정 없이 교만 떨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에게는 때가 중요하다. 뉴진스가 2022년에 활동을 시작했으니 지금의 자리인 것도 마찬가지겠다.
여기에서 사소한 의문 하나.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어쩌자고 신성로마제국이라 불리던 지역에서는 이렇게 많이 등장한 것일까. 중세 동화에 왕자와 공주가 흔하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 지역이 300여 개의 작은 왕국으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이다(왕국마다 왕자와 공주를 10명씩만 잡아도 3000명이다. 왕자와 공주가 툭하면 길에서 만나도 하나도 안 이상하다).
이들은 체면 유지를 위해 고용 음악가들로 이뤄진 관현악단을 보유했고 도시의 위상을 놓고 서로 질시했다. 자신이 속한 궁정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음악가들은 라이벌 궁정 소속 아티스트들과 피나는 경쟁을 벌여야 했으니 음악 수준이 매일 다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찌감치 절대 왕정이 확립돼 오직 한 사람의 취향만 저격하면 그만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2023년 대한민국은 김구 선생이 그토록 갈망하던 문화강국이 됐다. 남북한 체제 경쟁은 경제가 끝이 아니다. 문화가 체제 경쟁의 마지막 라운드다. 딸 데리고 다니며 핵무기 자랑하는 지도자 동지에게 한말씀 올린다. “뚱땡이, 보고 있냐? 너네는 뉴클리어밤 있지? 우리는 뉴진스 있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