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이화그룹 사태로 증권사는 국감서 뭇매…한국거래소 책임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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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그룹 국감장에 안 나타난 한국거래소
거래정지 번복에 이화그룹 사태 키웠단 지적
조회공시 제도 허점 다시금 일깨워…과거 확약서 놓쳐
검찰도 거래재개에 화들짝 놀랐단 이야기도 이화그룹의 매매 정지 사태는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상장사 경영진의 횡령과 배임부터 돈 벌기에 혈안이 된 증권사, 제 기능 못한 감독기관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물이다. 이번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사안이 다뤄졌다. 이화그룹과 관련해 불공정거래 의혹이 불거진 메리츠증권은 최희문 대표가 직접 증인으로 참석했으나 이번 사태를 키운 한국거래소 측 참고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화그룹 사태는 거래소가 지난 5월10일 이화전기에 전·현직 임원 등의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한국거래소는 조회공시 요구와 함께 이화전기의 주식 거래도 정지했다. 다음날 이화전기가 회사 대표의 횡령 금액이 약 8억원이라고 공시하자 거래소는 12일 장 개장과 동시에 거래 정지를 풀었다.
그런데 거래소는 같은 날 오후 2시22분께 다시 조회공시를 요구하며 이화전기의 주식 거래를 다시 정지했다. 검찰의 기소 내용과 회사 측 해명 내용이 크게 다르다며 다시 조회공시를 요구한 것이다. 계열사인 이트론과 이아이디 거래도 다시 정지됐다. 그로부터 거래소는 이화그룹 3사에 대해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등 현재까지도 거래가 멈춰있다.
개인투자자들은 거래소가 이화그룹 거래 정지를 6시간가량 풀어줬을 때 총 60억원어치 주식을 샀다. 이화전기와 이아이디에서만 각각 37억, 76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트론에선 55억원가량을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는 거래소의 조회공시 제도 허점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이 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사고를 낸 기업이 조회공시 요구에 불리한 정보를 숨기거나 무성의하게 답변을 하더라도 거래소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조회공시를 악용 사례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음에도 제도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화그룹 사태를 키운 거래 정지 번복은 원칙대로 처리했단 입장이다. 외부 제보를 토대로 추가적 공시를 요구해 다시 거래 정지 조치를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이화그룹 거래 정지와 관련해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화그룹에 대한 거래 재개 조치에 화들짝 놀란 검찰이 계열사별로 횡령금액 등을 정리, 공소장을 다시 작성해 거래소 측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공소장을 재작성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거래소는 이화그룹과 관련해 놓친 것이 하나 더 있다. 과거 이화전기가 거래소에 제출한 확약서 부분이다. 확약서엔 이화그룹 실질 사주이자 이번에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된 김영준 전 회장이 이화그룹 경영에 개입할 경우 매매 정지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 진행에 이의가 없단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전 회장의 경영 개입 논란은 2021년에도 불거졌었다. 당시 소명섭 이화전기 대표가 사내 메일을 통해 "모든 결정에 결재만 안 했을 뿐 뒤에서 개입해 사익을 채우고 있다"며 김 전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소 대표는 취임 1년 만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해당 내용이 기사화됐음에도 거래소 측에선 조회공시 등 어떠한 조치도 취하질 않았다. 당시 확약서 내용 자체를 내부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은 신뢰로 먹고사는 산업이다.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거래소가 최근 뒷짐을 진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이화그룹 소액주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감에 출석하는 등 정치권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럴때일수록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이화그룹 경영진의 부정 행위는 앞으로 검찰에서 밝혀낼 문제지만, 투자자 보호나 신뢰 회복은 거래소의 몫이다. 한국거래소 이사장는 최근 한 행사장에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처럼, 고착화된 규제와 비합리적 관행을 과감히 깨고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제2, 3의 이화그룹 사태를 막기 위해선 문제의 기업을 걸러낼 수 있는 거래소의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기업공개(IPO) 수만 늘리는 것이 거래소의 성과가 아니다. 건전한 자본시장을 조성하는 것도 거래소 본연의 역할이자 꼭 챙겨야 할 성과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
이화그룹 국감장에 안 나타난 한국거래소
거래정지 번복에 이화그룹 사태 키웠단 지적
조회공시 제도 허점 다시금 일깨워…과거 확약서 놓쳐
검찰도 거래재개에 화들짝 놀랐단 이야기도 이화그룹의 매매 정지 사태는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상장사 경영진의 횡령과 배임부터 돈 벌기에 혈안이 된 증권사, 제 기능 못한 감독기관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물이다. 이번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사안이 다뤄졌다. 이화그룹과 관련해 불공정거래 의혹이 불거진 메리츠증권은 최희문 대표가 직접 증인으로 참석했으나 이번 사태를 키운 한국거래소 측 참고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화그룹 사태는 거래소가 지난 5월10일 이화전기에 전·현직 임원 등의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한국거래소는 조회공시 요구와 함께 이화전기의 주식 거래도 정지했다. 다음날 이화전기가 회사 대표의 횡령 금액이 약 8억원이라고 공시하자 거래소는 12일 장 개장과 동시에 거래 정지를 풀었다.
그런데 거래소는 같은 날 오후 2시22분께 다시 조회공시를 요구하며 이화전기의 주식 거래를 다시 정지했다. 검찰의 기소 내용과 회사 측 해명 내용이 크게 다르다며 다시 조회공시를 요구한 것이다. 계열사인 이트론과 이아이디 거래도 다시 정지됐다. 그로부터 거래소는 이화그룹 3사에 대해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등 현재까지도 거래가 멈춰있다.
개인투자자들은 거래소가 이화그룹 거래 정지를 6시간가량 풀어줬을 때 총 60억원어치 주식을 샀다. 이화전기와 이아이디에서만 각각 37억, 76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트론에선 55억원가량을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는 거래소의 조회공시 제도 허점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이 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사고를 낸 기업이 조회공시 요구에 불리한 정보를 숨기거나 무성의하게 답변을 하더라도 거래소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조회공시를 악용 사례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음에도 제도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화그룹 사태를 키운 거래 정지 번복은 원칙대로 처리했단 입장이다. 외부 제보를 토대로 추가적 공시를 요구해 다시 거래 정지 조치를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이화그룹 거래 정지와 관련해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화그룹에 대한 거래 재개 조치에 화들짝 놀란 검찰이 계열사별로 횡령금액 등을 정리, 공소장을 다시 작성해 거래소 측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공소장을 재작성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거래소는 이화그룹과 관련해 놓친 것이 하나 더 있다. 과거 이화전기가 거래소에 제출한 확약서 부분이다. 확약서엔 이화그룹 실질 사주이자 이번에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된 김영준 전 회장이 이화그룹 경영에 개입할 경우 매매 정지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 진행에 이의가 없단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전 회장의 경영 개입 논란은 2021년에도 불거졌었다. 당시 소명섭 이화전기 대표가 사내 메일을 통해 "모든 결정에 결재만 안 했을 뿐 뒤에서 개입해 사익을 채우고 있다"며 김 전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소 대표는 취임 1년 만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해당 내용이 기사화됐음에도 거래소 측에선 조회공시 등 어떠한 조치도 취하질 않았다. 당시 확약서 내용 자체를 내부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은 신뢰로 먹고사는 산업이다.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거래소가 최근 뒷짐을 진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이화그룹 소액주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감에 출석하는 등 정치권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럴때일수록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이화그룹 경영진의 부정 행위는 앞으로 검찰에서 밝혀낼 문제지만, 투자자 보호나 신뢰 회복은 거래소의 몫이다. 한국거래소 이사장는 최근 한 행사장에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처럼, 고착화된 규제와 비합리적 관행을 과감히 깨고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제2, 3의 이화그룹 사태를 막기 위해선 문제의 기업을 걸러낼 수 있는 거래소의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기업공개(IPO) 수만 늘리는 것이 거래소의 성과가 아니다. 건전한 자본시장을 조성하는 것도 거래소 본연의 역할이자 꼭 챙겨야 할 성과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