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가난한 예술가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 - DREAMING WALLS : inside the Chelsea Hotel 을 보고
Dreaming Walls : Inside the Chelsea Hotel

이번 칼럼은 연극에 대한 글이 아니다. 이것은 한 다큐멘터리, 제15회 서울 국제건축영화제의 개막작이었던 ‘드리밍 월스(Dreaming Walls)’ 에 대한 이야기이다. 연극이 아닌 다큐를 소재로 택한 이유는 이 작품이 연극배우를 포함한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언젠가 한번 다뤄보고 싶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다큐의 배경은 뉴욕 맨하탄의 유서 깊은 ‘첼시(Chelsea) 호텔’이다. 리모델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이 호텔에는 1960년대부터 수십 년간 많은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 그곳의 무용가, 화가, 조형미술가, 작가, 음악가는 호텔측의 배려와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첼시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그 안에서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나 고급 호텔로 거듭나기 위한 건물주의 리모델링 결정으로 이제 그들은 호텔을 비워줘야 한다. 정이 듬뿍 든 호텔을 나오기도 싫지만 가난해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힘든 그들은 자신들의 방에 더욱 천착한다. 이 과정에서 극한 대립이나 폭력은 없다. 결론은 알 수 없지만 다큐에서 인부들은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층을 피해 공사를 해나가고, 예술가들은 소음 속에서 변함없이 식사를 하고 파티도 하며 자신의 작업을 이어간다. 심지어 왕년의 발레리나였던 할머니는 젊은 건설 인부에게 춤을 가르쳐주며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물론 이 예술가들이 사생활을 존중해달라하는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건물 철거를 하며 입주자를 내몰 때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흔히 등장하는 용역 깡패들, 협박, 폭력, 절규. 수십 년간 그런 모습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저 첼시 호텔에서의 일들이 슬프지만 아름답게 느껴졌다. 달리 선진국이 아니구나.

건설 공사와 일상이 공존하는 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감독은 그들 예술가들의 젊은 시절 영상을 오버랩하며 그들이 평생을 바쳐온 ‘예술’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예술가들은 오로지 예술 만을 생각한다. 그들에겐 애초에 ‘창작’이라는 DNA가 있다. 한 몸 누일 곳만 있다면 끊임없이 쓰고, 그림 그리고, 연주하며 행복해할 수 있다. 평생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은 시지프에겐 형벌이지만 예술가들에게 창작은 흔쾌히 평생을 몰두하는 노동이자 유희이다.

젊음을 예술에 바친 늙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물론 걱정없이 부유한 예술가들, 재테크 잘 해서 안정적인 이들, 국공립 단체 소속은 예외로 한다. 작가, 화가, 무용가, 배우들은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아 크게 성공한 일부 예술가들 외에는 은퇴 이후의 삶이 불안할 수 있다.

공무원은 박봉이라 하더라도 연금이 있고, 신부 등 수입이 없는 종교인에게는 은퇴 후 기거할 곳이 있지만 예술가는 아무도 챙기지 않는다. 돈을 우선 순위로 삼지 않는 예술가들이 곤궁한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왕 베르디는 동료 음악가들이 말년에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복지제도가 좋다 해도 당시는 고아, 장애인, 과부 등을 위하는 정도이지 가난한 예술인을 위한 제도는 없었다. 이를 안타까워했던 베르디는 평생 모은 재산을 털어 은퇴한 음악인들을 위한 집. 일종의 음악인 양로원인 ‘안식의 집(Casa di Riposo)’을 밀라노에 지었다.

이뿐만 아니라 그의 사후 저작권 수익까지 이곳의 운영을 위해 사용하도록 해놓았다. 지금도 ‘안식의 집’에는 노인 음악가들이 오손도손 모여 살아가고 있다. 말년에 그의 작품 중 최고를 뽑아달라는 질문에 베르디는 이 ‘안식의 집’을 자신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비바 베르디!

그러나 이것은 특별한 개인에게 의지할 문제는 아니다. 되도록 국가나 공공에서 배려해줘야 할 성격이다. 우리나라에도 예술가 레지던스 사업이 있으나 대부분 현직에서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연희문학창작촌, 신당창작아케이드, 금천예술공장 등은 입주작가를 선정해 십 년이 넘도록 레지던스를 지원하고 예술가들의 창작활동과 네트워킹을 독려하고 있다.

이는 다른 지자체 및 지역 문화재단으로 퍼져나가 이제는 평택, 대전, 충주, 춘천, 강릉, 진주, 울산 등 전국 각 지역에서 입주작가 지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 명동에 있는 프린스호텔도 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소설가의 집필활동을 돕기 위해 호텔 객실을 일정 기간 동안 집필실로 제공하고 있다. 모두 다 매우 훌륭하고 가치 있는 예술 지원 활동이다.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예술가 레지던스와 국제 교류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의 경우 좀더 역동적인데 고가네초(Koganeho) 지역의 집창촌을 철거하며 특유의 줄지은 작은 공간들을 공방, 스튜디오, 아트샵등으로 개조하고 그곳에 예술가 레지던스를 운영하며 예술가와 시민들을 만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것들은 대체로 청년이나 현직 예술가를 위한 프로그램이지 여전히 은퇴한 시니어 예술가를 위한 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창작의 샘은 말라버렸지만 젊은 날 열정을 바쳐 예술로써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그들에게 복지 차원에서 어느 정도 보상을 해주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까. 노후의 주거가 안정된다면 젊은 예술가들도 더 안정적으로 창작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아무래도 주무부처인 문체부에서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침 올해 들어 정부는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 계획을 새로 내놓았다. 예술활동 증명제를 확인제로 개선하고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률을 높이기로 했으며, 예술인 주거 지원을 위해 공공임대 주택을 늘리고 생활안정자금 대출과 전세자금 대출도 일반 금리보다 낮게 받을 수 있게 했다.

다큐 ‘드리밍 월스’에서 첼시 호텔 퇴거를 앞둔 불안한 노인 예술가들을 보며 나는 청년예술인, 신진예술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재의 지원 제도들을 가난한 시니어 예술인들을 향해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몇 해 전 문체부와 국토부가 예술인 주택을 함께 개발하기로 협약을 맺었는데 이를 포함한 공공임대 주택의 입주자 모집에도 20년 이상 예술활동을 한 사람을 포함시키는 등의 정책이 이어지면 좋겠고, 베르디처럼은 아니더라도 이미 국민들의 많은 사랑과 지지로 부와 명성을 이룬 스타 예술가들이 불우한 동료 예술가들을 돕는 모습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늙고 가난한 예술가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 - DREAMING WALLS : inside the Chelsea Hotel 을 보고
동시에 일생을 창작 활동에 매진해온 예술가들의 노하우를 또 다른 시니어들을 위한 예술 교육, 심리 상담 등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판단이 흐려진 리어왕이 딸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때 리어의 어리석음을 줄곧 일깨워주는 것은 광대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어머니와 숙부의 공모를 의심하던 햄릿이 사건의 실상을 깨닫게 된 것도 한 떠돌이 극단의 연극 덕분이었다. 나 같은 경우도 어느 공교육보다 예술 작품과 예술가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