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플리'(1999)의 한 장면.
영화 '리플리'(1999)의 한 장면.
요즘 ‘리플리’란 이름이 자주 회자한다. 남을 사칭한 사기꾼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탓이다. 리플리는 알랭 들롱이 주연한 1960년 영화 ‘태양의 가득히’의 주인공 이름이다. 1999년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보잘것 없는 삶을 살던 톰 리플리가 비슷한 또래의 상류층 청년을 만나 같이 어울리게 되고, 그를 죽인 뒤 그의 신분을 훔치는 내용이다.

원작은 따로 있다. 바로 미국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의 소설이다. 그는 1955년 <재능 있는 리플리씨>를 시작으로 1991년 <심연의 리플리>까지 다섯 편의 ‘리플리 시리즈’를 썼다. 그 5부작 세트가 최근 을유문화사에서 재출간됐다. 출판사 측은 “10년 만에 새로 완역했다”며 “새 번역은 하이스미스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리플리 5부작 세트. 을유문화사 제공.
리플리 5부작 세트. 을유문화사 제공.
영화화된 것은 첫 권인 <재능 있는 리플리씨>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나머지 책에서 이어진다.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사이코패스’로 꼽히는 리플리는 시리즈 내내 살인을 저지른다.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한 살인이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살인으로 변했다는 것만 차이점이다.

독특한 건 소설이 진행되면서 독자가 리플리에게 공포와 혐오감뿐 아니라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하이스미스가 독자들을 그렇게 유도했기 때문이다. 리플리의 가장 소름 끼치는 면조차 공감할 수 있게끔. 독자들이 자기 영혼의 어두운 구석을 마주할 수 있게끔.

하이스미스는 리플리의 머릿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가 왜 그런 기행을 저지르는지를 이해시키고 그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도록 조종한다. 범죄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방식은 당대에 참신한 시도로 평가받았다. 한니발 렉터와 같은 후대의 연쇄 살인범 캐릭터에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도 기이한 캐릭터를 창조한 하이스미스는 2008년 ‘타임’지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50인 중 1위를 차지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