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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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만하게도 인간이 생물학을 초월한 존재라고 여겨,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어느 때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정이 밤낮없이 돌아가는 현대 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다.”

러셀 포스터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라이프 타임, 생체시계의 비밀>에서 이렇게 진단한다. 그는 생체 시계를 연구하는 ‘일주기 리듬’ 분야의 권위자다. 책에서 그는 “우리는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 아무 때나 할 수 없다”며 “우리의 생물학은 24시간 생체 시계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다.

생체 시계는 정말 존재한다.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이 생체 시계의 비밀을 밝혀낸 세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과학자들은 뇌의 중심부에 위치한 시각교차위핵(SCN)이 생체 시계 역할을 한다고 본다. 약 5만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SCN은 각각의 뉴런이 자체적으로 시계를 갖고 있는데, 이 분자시계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약 24시간의 리듬이 생겨난다.
"장거리 비행을 한 뒤에는 절대로 중요한 협상을 하지마라"[책마을]
책은 생체 시계를 더 과학적으로 파고들기보다 이 리듬이 교란됐을 때 어떤 문제가 생겨나는지,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등 대중을 위한 건강 이야기로 방향을 튼다.

수면 및 일주기 리듬의 교란(SCRD)은 우선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인지 능력, 주의력, 창의성, 생산성이 떨어진다. 헨리 키신저도 이를 알았다. 1969~1977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밑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그는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여러 외교 협상을 벌였다.

그는 북베트남과 했던 협상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비행 이후에 곧바로 협상하러 갔는데 나는 북베트남의 무례한 태도에 거의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덫에 걸려들어 그들이 짠 시나리오대로 움직일 뻔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절대로 장거리 비행 이후에는 바로 협상을 시작하지 않았다.”

키신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매일 그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10대가 그렇다. 비즈니스맨, 의사, 변호사, 야간 교대 근무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책은 알람 시계가 있어야 일어날 수 있다든가, 낮에 졸리고 짜증이 난다든가, 카페인이 필요하고 달콤한 음료가 당긴다면 이미 생체 리듬이 교란된 징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생체 리듬의 교란은 혈당, 비만, 면역력 저하, 심혈관 질환, 알츠하이머 등 신체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책이 던지는 조언은 세세하다. 아침·점심·저녁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까지 얘기한다.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왕자처럼, 저녁은 소작농처럼 먹어라”고 했던 12세기 철학자 마이모니데스의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읽어볼 만한 책이지만 익숙한 내용이 많다.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다른 책들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대표적으로 매슈 워커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쓴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같은 책이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