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수십 년 동안 과점하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온 미국 주요 방산업체가 주도권을 빼앗길 위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고객인 미국 국방부의 군수품 조달 방식이 ‘속도전’으로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 등 최신 기술로 무장한 빅테크 등 민간업체들까지 시장을 넘보고 있어서다. 관행에 안주하며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 주요 군수업체의 경쟁우위가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점으로 큰 이익 내온 美 군수업체들
이코노미스트의 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냉전 종식 이후 미국 방산업체들이 통합하면서 과점 체제가 고착화했다. 1950년대 50여 곳에 달하던 방산업체는 6곳으로 줄었다. 미국 국방부는 무기 조달 및 연구개발(R&D) 예산으로 연간 3150억달러(약 422조원)를 쏟아붓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은 국방부와 직접 거래하는 소수의 군수업체에 돌아간다.
그 결과 미 방산업체는 수십 년에 걸친 장기 계약을 맺으며 안정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 록히드마틴, 제너럴다이내믹스, 노스롭그루먼 등 주요 방산업체의 주가는 시장 수익률(S&P500 기준)을 웃돌았다. 지난 4월 미 국방부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00~2019년 방위산업체들은 민간업체 대비 주주 수익률, 자산 수익률, 자기자본 수익률 등에서 우위였다.
미 국방부는 군수업체들이 쓴 R&D 비용에 10~15%를 추가 지급하는 ‘비용 플러스’ 방식으로 조달계약을 맺어왔다. 따라서 이들 군수업체는 불확실한 기술에 투자할 유인이 없고, 정해진 시간과 예산에 맞춰 납품할 필요가 없다. 일례로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 제작 프로젝트는 1990년대에 시작됐지만 10년 정도 지연되고 있다. 또 무기 생산이 시작되면 수십 년 동안 고정가격으로 납품할 수 있다. 노스롭그루먼이 개발 중인 B-21 스텔스 폭격기도 30년에 걸쳐 100대를 납품하는 데 2000억달러 이상을 받게 될 전망이다.
○빅테크 가세로 경쟁우위 약화
하지만 현대 전투가 점점 더 작고 단순한 전술 장비와 통신, 센서, 소프트웨어 및 데이터에 의존하는 추세로 변화하면서 미 국방부의 군수품 조달 관행도 바뀌고 있다. 오랜 기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기존 업체보다 비용 대비 효율이 더 좋은 군산복합업체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민간기업들이 군수업체들과 손잡고 미 국방부의 계약을 따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20년 독일 무기업체 라인메탈의 미국지사와 함께 군용 트럭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 구글, MS 등 빅테크 기업들도 이런 변화를 틈타 방산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방 및 보안 분야가 빅테크의 수익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드문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들 세 업체는 소프트웨어 제조회사인 오라클과 함께 미 국방부와 90억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계약을 맺었다. MS는 군대에 증강현실 고글을 공급하는 계약도 맺었다. 스페이스X는 우크라이나 군대에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생 방산업체들도 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업체 안두릴은 단거리 드론 ‘고스트’를 제작하고 있다. 민첩한 시장 대응을 위해 로켓 엔진 제조업체를 인수한 데 이어 호주 해군을 위한 수중 자율 선박도 개발 중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의 스티브 그루드먼 연구원은 “‘디지털 네이티브’도 아닌 데다 대량의 하드웨어(무기)를 느리게 생산해온 군수업체들에 이런 변화는 수용하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