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분양'이래서 썼는데…반년 안에 잔금까지 내라고요?
후분양 물량, 입주 빠른 만큼 아파트 대금 빨리 치러
무순위 ‘줍줍’도 당첨발표 직후 계약금 납부해야
청약 포기 땐 규제 걸리거나 애꿎은 통장 날릴 수도

“시세 차익이 있을 거라고 해서 일단 쓰고 봤는데, 입주일이 빨라서 입주 전까지 지금 사는 집을 정리하고 자금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거주 의무도 있어서 당장 전세를 줄 수 없다고 하니 난감하네요.”

서울에 거주 중인 40대 김모씨는 최근 공급된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적용 단지 청약에 1순위 통장을 썼다. 김 씨는 “시세 차익이 최소 1억원 이상”이라는 주변인의 말을 듣고 구체적인 내용을 따져 보지도 않고 청약했다. 뒤늦게 후분양 단지라는 사실을 듣고 당황했다. 입주 예정일이 내년 상반기여서 반년 남짓한 기간 내 수억원의 아파트 대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또분양'이래서 썼는데…반년 안에 잔금까지 내라고요?
최근 건설사들이 공급을 미뤘던 아파트 단지 분양에 속속 나서면서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 수도권에서 일반공급과 특별공급 등 청약 당첨자의 과반이 30대 이하인 것으로 나타나는 등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청년층의 청약 참여율이 높았다. 가점이 낮아도 도전할 수 있는 추첨제 물량이 올 4월부터 늘어난 영향이다. 청약 당첨 후 입주 전까지 대금을 나눠 낼 수 있어 현금 동원력이 부족한 20~30대에게 추첨제 청약이 내 집 마련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청약 단지라고 해도 대금을 빠르게 마련해야 하는 후분양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잔금을 마련하다 실패해 청약을 포기하는 상황이 오면 오히려 청약 통장을 날리거나 재당첨 제한 등 규제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첨 직후 계약금을 내야 하는 무순위 '줍줍' 물량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아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입주 일정이 빠른 단지를 청약할 때는 자금 조달 계획을 꼼꼼히 세워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입주 빠른 후분양…이르면 청약 1년도 안 돼 입주

후분양이란 공급되는 아파트 단지가 이미 공사를 시작해 공정률이 60%를 넘긴 상태에서 분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분양이 착공 전 자금 마련 단계에서 시행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후분양한 단지는 공사가 진행된 현장 상황을 일정 부분 직접 확인하고 들어갈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청약일로부터 준공 예정일이 빨라 대금 마련 시간이 짧다. 건설업체의 금융 비용 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선분양보다 분양가가 높아지는 경우도 많다.
서울 한 아파트단지 견본주택에서 시민들이 청약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한 아파트단지 견본주택에서 시민들이 청약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선보인 후분양 단지는 지난 9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공급한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와 지난달 1순위 청약한 경기 광명시 광명동 ‘트리우스 광명’ 등이 대표적이다.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는 내년 3월, 트리우스 광명은 내년 12월 입주 예정이다. 두 단지는 1순위 청약에서 각각 14 대 1, 5.5 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다.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는 계약일로부터 6개월여 만에, 트리우스 광명은 14개월 만에 분양 대금을 마련해야 한다.

자금 조달 못해 청약 포기하기도

문제는 계약일로부터 입주 예정일까지 기간이 짧아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계약 단계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다. 실제로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의 경우 높은 1순위 경쟁률과는 달리 아파트 ‘완전판매’(완판)에는 실패했다. 전용 84㎡ 아파트가 14억원에 육박해 인근 지역 시세보다 비싸다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6개월 안에 분양 자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트리우스 광명 역시 전용 84㎡ 분양가가 11억원에 달해 인근 단지 시세보다 높다는 평가가 많았다. 오는 6~11일 계약일에 포기자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 은평구 수색동 'DMC 파인시티 자이' 조감도. GS건설
서울 은평구 수색동 'DMC 파인시티 자이' 조감도. GS건설
무순위 청약도 후분양과 마찬가지로 자금 조달 일정이 빠듯하다. 실제로 무순위 청약에 당첨된 후 계약금을 바로 마련하지 못해 당첨 기회를 놓친 사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무순위 청약으로 나온 은평구 수색 ‘DMC 파인시티자이’ 전용 59㎡ 미계약 잔여 1가구 모집에는 29만8000여명이 몰려 ‘로또 분양’이란 별명을 얻었다. 발코니 확장 비용 포함 분양가가 5억원대로 당시 인근 단지 시세보다 크게 낮아 실수요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최초 당첨된 20대 여성은 당첨자 발표날인 12월30일 당일 오후까지 납부해야 하는 1억여원의 계약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아파트는 예비 1번에게 순번이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모은 청약통장 없어진다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를 계약하지 않을 경우 청약 통장을 날리거나 심한 경우 재당첨 제한을 받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우선 규제지역에서 분양한 아파트의 1순위 청약에 당첨된 뒤 계약을 경우 포기한다면 재당첨 제한을 받는다. 현재 재당첨 제한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 등 투기과열지구에 최장 10년 적용된다.
'로또분양'이래서 썼는데…반년 안에 잔금까지 내라고요?
규제지역이 아니더라도 특별공급이나 1순위 청약을 하면 청약통장을 사용하게 된다. 통장을 사용한 뒤 계약을 포기해 다시 청약통장에 가입할 경우 그동안 쌓아 놓은 가점을 잃는다. 가점이 낮은 통장이라고 하더라도 새로 만든 청약 통장을 1순위 통장으로 만들기까지 일정 기간이 소요된다. 이 사이 생기는 청약 기회를 놓치게 되는 셈이다. 1순위 청약통장이 되기 위해서는 수도권 기준 가입 1년 이상, 12회 이상 납입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투기과열·청약과열 지역 1순위 통장은 가입 기간 2년, 납입금 24회 이상이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