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 메이저 '벌크업', 유럽은 친환경 외길 [원자재 이슈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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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대신 남는돈 배당한 영국 BP와 쉘
석유부문 덩치 키운 미국 셰브런과 엑손모빌
미국과 유럽 에너지 기업 운명 엇갈릴 전망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BP는 인수합병(M&A)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국 석유기업 BP의 머레이 오친클로스 임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실적 발표에서 투자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에 육박하면서 석유 사업은 황금알을 낳고 있지만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친환경 사업 등에 더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반면 미국의 양대 메이저 석유 기업 엑손모빌과 셰브론은 최근 수십억 달러 규모의 M&A로 석유 부문을 확대했다. 미국 메이저들은 BP, 쉘 등 유럽 에너지 기업과의 규모 격차를 크게 벌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 방지는 포기한 듯한 미국 업체들과, 반대로 환경을 지키려는 유럽 석유 메이저의 운명은 향후 크게 엇갈릴 전망이다.
당장은 미국 기업의 승리로 보인다. BP 등 유럽 에너지 기업들이 투자한 친환경 에너지 관련 사업은 시장금리 상승으로 쑥대밭이 됐다. BP는 미국 뉴욕주 앞바다에서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추진하다 5억4000만달러(약 7250억원)를 날리는 등 큰 손실을 보고 있다.
와엘 사완 쉘 CEO 역시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인수 대신 자사주 매입을 늘리면고 주주들에게 현금을 배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가 저평가됐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인수보다는 자사주 매입에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쉘은 3분기에 62억달러의 영업이익(조정)을 냈고, 4분기에 35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할 예정이다. 셸을 3분기에도 3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올해 주주환원 규모는 23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에도 쉘은 역대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180억달러의 자사주 매입을 포함해 260억달러 규모의 주주환원을 실시했다.
수익 대부분을 화석연료 사업에서 올렸지만, 재투자는 하지 않고 배당하거나 자사주 매입에 쓴다는 것이다. 쉘의 수익 가운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천연가스 부문이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호주 프렐류드 시설 유지보수로 전 분기 대비 생산량이 9% 감소했으나 25억달러의 수익을 냈다. 원유 시추에서도 심해 유전 생산량이 증가하고 유가가 상승하면서 22억달러의 이익을 냈다. 신규 투자에서도 쉘과 BP는 친환경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초 탈탄소 전환을 늦추고 일부 투자를 감축하는 등 속도를 조절했으나 여전히 규모가 크다. 쉘은 중국에 단일 부지에 258개의 충전소를 갖춘 세계 최대 전기 자동차 충전 허브를 개설하기로 했고, 브라질에선 합작 투자사인 라이젠을 통해 바이오 연료를 생산을 시작하는 등 투자를 하고 있다. 당장은 수익에 도움이 안 되지만 장래엔 큰 수익으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BP와 쉘이 이 같은 선택을 한 근거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자료다. IEA는 지난달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2030년께 하루 최대 1억200만 배럴까지 늘어난 석유 소비가 2050년쯤엔 9700만 배럴로 감소한다"고 내다봤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지난 9월 FT 기고문에서 “끝이 없어 보이는 화석연료 성장의 시대가 10년 안에 끝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IEA의 전망을 뒷받침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담합 때문에 만성이 된 에너지난에 지친 세계 각국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재개해 원전 르네상스가 펼쳐지고 있다.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은 에너지 안보와 신산업 육성을 위해 전기차에 올인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1970년대부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기후변화에 대해 정확한 예측 데이터를 확보하기도 했다. 다만 탄소배출 자체를 줄인다는 데는 관심이 없다. 엑손모빌은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는 대신 대기중에 탄소를 줄이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엑손모빌은 오는 2027년까지 탄소 포집 기술에 170억 달러(약 23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석유부문 덩치 키운 미국 셰브런과 엑손모빌
미국과 유럽 에너지 기업 운명 엇갈릴 전망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BP는 인수합병(M&A)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국 석유기업 BP의 머레이 오친클로스 임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실적 발표에서 투자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에 육박하면서 석유 사업은 황금알을 낳고 있지만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친환경 사업 등에 더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반면 미국의 양대 메이저 석유 기업 엑손모빌과 셰브론은 최근 수십억 달러 규모의 M&A로 석유 부문을 확대했다. 미국 메이저들은 BP, 쉘 등 유럽 에너지 기업과의 규모 격차를 크게 벌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 방지는 포기한 듯한 미국 업체들과, 반대로 환경을 지키려는 유럽 석유 메이저의 운명은 향후 크게 엇갈릴 전망이다.
당장은 미국 기업의 승리로 보인다. BP 등 유럽 에너지 기업들이 투자한 친환경 에너지 관련 사업은 시장금리 상승으로 쑥대밭이 됐다. BP는 미국 뉴욕주 앞바다에서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추진하다 5억4000만달러(약 7250억원)를 날리는 등 큰 손실을 보고 있다.
"7년 후부터 석유 수요 줄어든다"에 베팅한 유럽
BP는 지난 9월 부하 직원과 스캔들로 버나드 루니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하며 크게 흔들린 탓에 자의 반 타의 반 석유·가스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영국 에너지 기업 쉘은 한층 확고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와엘 사완 쉘 CEO 역시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인수 대신 자사주 매입을 늘리면고 주주들에게 현금을 배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가 저평가됐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인수보다는 자사주 매입에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쉘은 3분기에 62억달러의 영업이익(조정)을 냈고, 4분기에 35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할 예정이다. 셸을 3분기에도 3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올해 주주환원 규모는 23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에도 쉘은 역대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180억달러의 자사주 매입을 포함해 260억달러 규모의 주주환원을 실시했다.
수익 대부분을 화석연료 사업에서 올렸지만, 재투자는 하지 않고 배당하거나 자사주 매입에 쓴다는 것이다. 쉘의 수익 가운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천연가스 부문이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호주 프렐류드 시설 유지보수로 전 분기 대비 생산량이 9% 감소했으나 25억달러의 수익을 냈다. 원유 시추에서도 심해 유전 생산량이 증가하고 유가가 상승하면서 22억달러의 이익을 냈다. 신규 투자에서도 쉘과 BP는 친환경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초 탈탄소 전환을 늦추고 일부 투자를 감축하는 등 속도를 조절했으나 여전히 규모가 크다. 쉘은 중국에 단일 부지에 258개의 충전소를 갖춘 세계 최대 전기 자동차 충전 허브를 개설하기로 했고, 브라질에선 합작 투자사인 라이젠을 통해 바이오 연료를 생산을 시작하는 등 투자를 하고 있다. 당장은 수익에 도움이 안 되지만 장래엔 큰 수익으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BP와 쉘이 이 같은 선택을 한 근거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자료다. IEA는 지난달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2030년께 하루 최대 1억200만 배럴까지 늘어난 석유 소비가 2050년쯤엔 9700만 배럴로 감소한다"고 내다봤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지난 9월 FT 기고문에서 “끝이 없어 보이는 화석연료 성장의 시대가 10년 안에 끝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IEA의 전망을 뒷받침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담합 때문에 만성이 된 에너지난에 지친 세계 각국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재개해 원전 르네상스가 펼쳐지고 있다.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은 에너지 안보와 신산업 육성을 위해 전기차에 올인하고 있다.
엑손, 셰브런 "나이지리아에서 테슬라 팔릴 리 없다"
미국의 석유 메이저 셰브런은 지난달 미국의 에너지기업 헤스코퍼레이션을 530억달러(약 72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번 인수로 셰브런은 매장량이 110억 배럴 이상으로 추정되는 가이아나 해저 광구의 지분 30%를 확보했다. 가이아나는 남미의 신흥 산유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방 최대 석유기업 엑손모빌도 미국 셰일가스 기업 파이어니어내추럴리소시스를 600억 달러(81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엑손모빌은 현재 일일 560만배럴 정도인 원유 생산량이 70만배럴 증가해 일일 생산량 63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적인 인수 합병이 이뤄지면, 일일 원유 생산량 1000만배럴을 넘나드는 사우디 국영 아람코와도 경쟁을 벌일 수 있을 전망이다. 미국 기업들이 석유 투자에 나선 것은 석유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하이탐 알 가이스 OPEC 사무총장은 "2022년 하루 9960만 배럴인 석유 수요가 2045년까지 계속 늘어나서 하루 1억1600만 배럴이 될 것"이란 OPEC의 예상치를 공개했다. 비싼 에너지 생산 비용 때문에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생각보다 늦어질 것이란 예상이다. 친환경 따위에 아무 관심 없는 저개발 신흥국의 인구와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는 점도 석유 수요 증가 전망의 근거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사설에서 "나이지리아인들이 테슬라를 운전하거나 태양전지판으로 집에 전력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엑손모빌은 1970년대부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기후변화에 대해 정확한 예측 데이터를 확보하기도 했다. 다만 탄소배출 자체를 줄인다는 데는 관심이 없다. 엑손모빌은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는 대신 대기중에 탄소를 줄이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엑손모빌은 오는 2027년까지 탄소 포집 기술에 170억 달러(약 23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