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호의 저작권 세상] 업데이트가 필요한 '외국 석학 활용법'
“한국은 완전히 망했네요!” 미국 노동법학계 석학인 조앤 C 윌리엄스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을 보고 놀라며 던진 말이다. 이 말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고, 정부와 민간 모두가 위기감을 느끼도록 했다. 아마도 한국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이 정도의 충격과 반향을 가져오기는커녕 적지 않은 비난에 직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외국 석학이 내놓은 의견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점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지적한 것이라는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국외의 석학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고, 역사와 연구에서 도출되는 지혜를 전달해줄 때가 많다.

연말은 여러 의미에서 석학의 시즌이라 할 만큼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찾아와 미래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를 역설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외국 석학 활용법’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는 ‘유명한 사람=석학’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데, 잘못된 접근이다. 학자는 말이 아닌 학문적 성과로, 동료 학자들의 인정 속에서 석학이 된다. 방송 출연이나 대중 강연이 그를 석학으로 만들어주지 않음은 물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전달하는 지식이란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복잡한 학술적 성과에 대해 듣기 위해 석학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간단한 지식 전달은 국내 석학 내지 연구자에게 맡기더라도 부족하지 않다.

둘째, 석학 모시기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 종종 국외 학자들을 만나면, 우리나라에서 받았던 극진한 대접이 좋았다는 이들이 있다. 우리나라에 대해 받은 인상이 좋았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의전’과 ‘대접’ 때문이라면 곤란한 일이다. 당연히 엄청나게 바쁜 일정 중에도 우리나라를 찾은 석학을 가능한 한 예우해야겠지만, 석학을 모시기 위해 서로 경쟁하거나 저자세가 돼서는 안 된다.

셋째, 우리는 원하는 답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석학의 쓴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따금 연사로 나서는 국외 석학이 한국의 발전상을 칭송하면서 엄지를 치켜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지만, 굳이 이 자리까지 와서 칭찬을 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석학의 지혜는 칭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적과 비판에서 나온다.

넷째, 석학 앓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국제적 석학이 하루에 받는 메일은 수백 통에 이른다. 그만큼 그들은 주최 측의 구체적인 초청 의도에 맞춘 준비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 세상에 단번에 석학이 되는 이는 없고, 석학의 길목에서 왕성하게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많다. 우리가 석학에 대해 갖는 의존도만 줄인다면, 기꺼이 한국을 위해 연구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해줄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끝으로 석학이라는 명칭을 자의적으로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외국에서 신세를 졌거나 친분이 있는 국외 연구자가 우리나라에서 석학으로 ‘둔갑’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그만큼 석학을 가려내는 데 취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한데, 이 때문인지 우리는 학술적 성과가 아닌 지위, 수상, 경력 등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외 석학과 함께 진행하는 모든 교류가 내실 있고 풍요롭게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