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가 6일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화면 속)과 화상으로 대담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가 6일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화면 속)과 화상으로 대담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창(용)! 자네의 대학원생 때 주제를 상기시켜주고 싶네. 정규분포(normal curve)가 아니라 체비쇼프 부등식에 대해 생각하라고 말이야."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6일 한국은행과 세계은행(WB)이 공동개최한 서울 포럼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와 화상으로 대담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전쟁 장기화, 미중갈등 격화 등 지정학적 문제가 확대되는 가운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중앙은행의 정책입안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다.

서머스 전 장관은 "중앙효과보다 꼬리효과에 대해 더 생각해야한다"며 "지급준비금(reserve) 관리자들은 아주 극단적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계획해야한다"고 말했다.

체비쇼프 부등식에 따르면 '평균값으로부터 k 표준편차 이상 떨어진 것들은 1/k²이상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정규분포 가정에 비해 꼬리 값이 더 크다. 평균을 기준으로 ±3표준편차 바깥의 값 비중은 정규분포에서는 0.3%에 그치지만 체비쇼프 부등식에선 약 11%(1/9)까지 차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서머스 전 장관이 '극단적인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경제학 이론을 꺼낸 것으로 파악된다.

서머스 전 장관의 조언 내용만큼 눈길을 끈 것은 '창(용)'이라는 호칭이었다. 미국의 전 재무장관이 한국의 중앙은행 총재의 이름을 부르며 격의 없이 대화한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이 사제지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총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때 그의 지도교수가 바로 서머스 전 장관이다.

이 총재는 평소 서머스 전 장관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드러냈고, 서머스 전 장관도 아끼는 제자로 이 총재를 꼽는다. 이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으로 선발될 때도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이 총재를 지원해달라고 말하는 등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날 대담은 공식적인 자리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이 총재는 서머스 전 장관을 소개하며 "제 지도교수이자 인생의 멘토"라며 "(서머스 전 장관과의) 5분 간의 대화가 100권의 책을 읽는 것이나 다른 이코노미스트들과 장시간 토론하는 것보다 유익하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새벽까지 함께 공부했던 일화도 얘기했다. 이 총재는 "작은 사무실에서 새벽 2시까지 함께 공부했다"며 "그러고나서 나는 공부했던 것을 따라잡기 위해서 새벽 4시까지 더 (공부를) 해야했다"고 말했다.

서머스 전 장관도 "나의 전 지도학생을 만나서 반갑고, 한국의 중앙은행 총재가 된 그를 만나 더 영광"이라고 말했다. 중립금리에 대한 이 총재의 고민을 듣고서는 "나는 이제 변변찮은(humble) 교수이고, 자네는 중앙은행 총재이니 자네가 한국에 대해 나보다 훨씬, 훨씬 더 잘 알고 있겠지"라는 존중의 말로 답변을 시작하기도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