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은 어쩌다 세력에 5000억을 털렸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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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끝난 지금도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큽니다. 전쟁 터지고, 금리 폭등하고, 인공지능에 뭐에. 뉴스만 틀면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게 너무 많아요. 근데, 이런 식의 시장이 오면 누가 가장 득을 볼까요? 워런 버핏도 있고, 뭐 많겠죠. 근데 제 생각에는 증권사들이 제일 좋습니다. 주식을 샀다 팔았다 많이 하면 할수록 수수료가 늘잖아요. 카지노에서 돈은 하우스가 다 번다는 말도 있죠. 물론, 하우스가 굉장히 드물게 돈을 왕창 잃기도 합니다. 타짜나 세력에 제대로 걸리면요. 근데, 이런 일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국의 최대 하우스, 아니 증권사가요. 브로커리지 분야에서 압도적인 1등인 키움증권이 세력에게 털린 얘기를 지금부터 해볼까 합니다.
키움증권이 2023년 10월 20일 공시를 하나 했는데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정 종목 하한가에 따른 위탁계좌 미수금 발생 관련. 특정 종목은 영풍제지고. 하한가는 가격 제한폭인 30%나 주가가 떨어졌다는 얘기고. 미수금 규모는 무려 4943억원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부연설명 하면요. 미수거래는 주식 할 때 많이들 하시죠. 내가 주식을 매수하면, 이 계약이 체결돼서 실제로 내 계좌로 들어오는 데 사흘이 걸립니다. 월요일에 삼성전자 샀다, 그럼 수요일에 내 잔고에 들어와요. 이렇게 체결되는 기간이 있으니까, 이 기간에 당장 돈이 좀 적게 있어도 증권사가 외상으로 돈을 대주는 것을 미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증거금률 40%인 종목이면, 100만원 어치 살 때 40만원만 있으면 우선 매수 주문을 증권사가 넣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 체결되는 수요일까지 나머지 돈 60만원을 채워 넣거나, 주식을 팔아서 미수금을 갚거나 하면 돼요. 이 땐 이자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이틀 먹고 빠진다 할 때 미수거래 이용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많이 깨질수도 있고요. 만약에 미수 쓰고 돈을 못 갚으면, 이 땐 증권사가 나섭니다. 채권 추심 해야 하니까요. 해당 종목을 거의 떨이 수준으로, 정확히는 하한가에 내놓고 사람들이 여기 달라 붙어서 주식을 사면 현금화 해서 가져갑니다.
다시 공시로 돌아가서, 누군가 키움증권을 통해서 미수 거래를 했는데, 그 종목이 영풍제지고. 증거금률은 공시에는 안 나왔지만, 40%였고요. 이 증거금률을 기반으로 영풍제지를 얼마 샀는지 역산하면, 8238억원이 나와요. 이 누군가는 자기돈 3200억원 정도에 키움증권 미수 약 5000억원을 당겨서 영풍제지 주식을 무진장 사들였다는 얘깁니다. 영풍제지는 소위 작전이 들어간 종목이죠. 대양금속이란 회사가 작년에 1300억원쯤 주고 이 회사를 샀는데, 막상 인수금액 1300억원이 없었봐요. 그래서 주가 조작을 통해 돈을 마련하기로 한겁니다. 자기가 산 회사 주식을 계속 사서 주가를 띄우고 이 틈에 개인들에게 팔아서 시세차익을 노린 것이었어요. 지금 수사가 진행 중이라 정확한 건 지나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작년 10월부터 올 8월까지 2만9000회에 걸쳐 매매를 했고, 키움증권 계좌가 100여개 동원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영풍제지 주식을 세력들이 사니까 3000원 정도 했던 주가가 10개월 만에 4만원 이상으로 폭등했고요. 이 와중에 틈틈이 팔아서 2900억원 넘는 부당 이득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요. 근데, 이 작전 세력은 왜 키움증권을 썼을까요. 수수료가 싸서. 그런것도 있겠지만요. 핵심적인 것은 미수 거래에 관대하다는 것입니다.
영풍제지의 경우 주가가 이유 없이 급등하니까 다른 증권사들이 아, 이거 위험하다, 하고 미수를 틀어 막았는데 키움만 미수를 터줬어요. 미수 증거금률 40%면 가진 돈의 2.5배 만큼 주식을 살 수 있다는 의미에요. 이렇게 해주면 수수료도 2.5배가 됩니다. 그러니까 미수는 고객을 위한 것도 있지만, 증권사 자기들을 위한 목적이 더 크죠. 이렇게 미수 쓰게 해주고 수수료 챙기는 게 평상시에는 굉장히 짭짤한데, 문제는 이게 평상시가 아니란 점이었어요. 작전 세력들이 구속이 되고, 영풍제지 주식 거래가 2023년 10월 19일 정지됩니다. 제가 아까 키움증권이 5000억원 털렸다고 공시한 날이 언제라고 했죠? 맞습니다. 그 다음날인 10월 20일이었어요. 그리고 거래가 재게된 게 10월 26일이니까, 이미 사람들은 키움증권이 거래 재개 이후에 미수금 회수하려고 영풍제지 주식을 떨이로 마구 내놓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도박으로 치면 패를 다 보여주면서 하는 셈인 겁니다.
사람들은 그럼 키움증권이 내놓은 영풍제지 주식을 사줄까요. 당연히 안 사줍니다. 나올 물량이 8000억원 어치가 넘는데, 뭐하러 비싸게 사겠어요. 살 사람이 없으니 주식은 당연히 하한가. 27일에도 하한가. 이렇게 하한가가 이어져서 11월 2일까지 7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1월 3일 하한가가 풀리고 개인 투자자들이 이 주식을 엄청 사주면서 거래량이 폭발, 키움증권은 물량을 다 털어낸 것으로 추산이 됩니다. 키움증권이 주가 4010원에 물량을 다 털었다고 가정을 하면, 회수액은 679억원, 손실액은 4200억원을 넘습니다. 대부분의 미수금을 날린 셈이죠. 물론 나중에 세력들이 부당 이득으로 가져간 돈을 일부 회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키움증권이 세력에게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불과 7개월 전인 올 4월에도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땐 700억원 가량을 충당금으로 쌓았어요. 충당금은 손해 볼 가능성이 있어서, 회계적으로 미리 이익에서 까고, 나중에 혹시 좀 덜 손해보면 다시 채워넣는 회계적 용어인데요. 700억원 그냥 손해봤다, 이렇게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이 땐 라덕연 사태였죠. 연예인 임청정 씨를 비롯해 수 천명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우량하고 거래가 잘 안 되는 8개 종목을 타깃으로 주가를 띄운 사건이었는데요. 여기서도 미수 거래와 유사한 레버리지 투자인 차액결제거래, CFD가 동원이 됩니다. CFD는 주식을 실제로 보유하지는 않고, 가격이 오르거나 내린 변동분에 대해서만 차액을 결제하는 파생상품인데요. 자기가 가진 돈의 최대 열 배 만큼 주식을 사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식 투자와 다르게 손해를 보면 자기가 가진 돈보다 더 많이 손실도 볼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이 돈을 고객이 안 갚으면 증권사가 떼이게 되는 것이죠. 라덕연 사태 땐 키움증권 뿐 아니라 다른 증권사들도 몇 백억원 씩 떼여서 그나마 면피는 했는데, 이번 영풍제지 건은 주식담보 아니고 미수로 떼인 건 키움이 거의 유일해서 살짝 업계에서 바보 된 분위기 입니다.
사실 키움증권이 많이 크긴 했어요. 개인들이 워낙 많이들 키움 계좌로 주식 거래를 하고 있어서, 원래 이 회사가 대기업 같은 느낌인데요. 2000년에 설립된 비교적 신생 회삽니다. 키움증권은 소프트웨어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다우기술의 창업자 김익래 회장이 권성문 전 KTB투자증권 회장과 함께 세웠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원래는 김익래 회장이 키움증권 설립 때 자금 일부와 IT 부문만 맡고, 경영은 권성문 회장이 주도한다는 구상이었대요. 그런데 권성문 회장이 '냉각 캔' 사건이란 것으로 검찰에 고발이 된 적이 있어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2대주주인 다우기술이 주도해서 회사가 세워진 것이고요. 한국거래소, 당시에는 한국증권거래소였는데, 여기 이사장을 역임했던 김봉수 대표를 영입해서 거의 전권을 맡겼다고 합니다.
키움증권의 전략은 굉장히 간단했어요. 지점을 만들지 않고 컴퓨터로만 거래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아낀 돈으로 고객들의 거래 수수료를 10분의 1 수준으로 깎아준다. 지금은 주식 거래를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하지만, 당시만 해도 지점을 찾아가서 거래하거나, 전화로 주문하는 게 일반적이었거든요. 이런 사람들의 거래 방식을 온라인으로 바꾸려면 뭔가 획기적인 게 있어야 했고, 그래서 유통으로 치면 최저가를 들고 나온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영웅문'이 나오게 됩니다. 이후에 다른 증권사들도 수수료를 대폭 낮추고 키움에 대응하긴 했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키움증권을 이기진 못했어요. 키움증권의 브로커리지 부문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금도 1등인데요. 점유율이 20% 가량 합니다.
국내 다른 메이저 증권사들은 이후에 브로커리지 뿐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 자문이나 해외 부동산 투자 같은 폼 나는 사업으로 확장할 때도 키움증권은 브로커리지에 집중해서 지금도 매출의 대부분을 브로커리지에서 올리고 있어요. 키움증권의 영웅문을 저도 쓰고 있는데요. 사실 이게 예전 버전에서 크게 발전된 게 없어서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도 있거든요. 영웅문 유저 인터페이스 보면, 살짝 과거 리니지 느낌도 나고요. 그래도 워낙 오래 쓰신 분들이 많아서 익숙해서 그런지 키움은 여기에 돈도 많이 안 씁니다. 개인적으로 맥 운영체계에 잘 돌아가는 영운문도 나오면 좋겠는데, 이것도 관심이 없어 보이고요. 어쨌든 이렇게 브로커리지에 특화 해서 2021년에는 순이익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 집단에도 들어갔습니다. 키움증권이 올 들어 세력에 워낙 당하다 보니까 '세력의 놀이터'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누가 뭐래도 키움증권은 개인 투자자들의 놀이터죠. 특히 하루 이틀 단위로 단기 트레이딩 하시는 분들, 혹은 몇 초 단위로 거래하는 스캘퍼 분들은 거의 대부분 키움증권을 주 거래 증권사로 사용해고 있으세요.
이런 증권사가 세력에 이렇게 연달아 당했다는 것은 굉장히 실망스러운 부분이기도 해요. 영업 노하우만 쌓고 리스크 관리 노하우는 잘 못 쌓았던 것 같습니다. 또 김익래 회장이 라덕연 사태 때 자기 회사, 다우데이타 주가가 급등하니까 600억원 어치를 팔아서 엄청난 지탄을 받기도 했는데요. 사실 이건 지탄이 문제가 아니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사안이리도 하죠. 이것 때문에 그룹 회장 직에서도 내려왔고요. 이번 기회에 내부적으로 단속도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당한 것에 비해 주가는 잘 버텼어요. 5000억원 털렸다고 공시한 직후에 20% 넘게 폭락하긴 했지만, 이내 회복을 했거든요. 5000억원이 큰 돈이긴 하지만요. 키움증권이 최소 연간 5000억원 이상 이익을 내주는 캐시카우이기 때문에, 시장에선 오히려 주가 떨어질 때 사야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부디 키움증권이 이번 위기를 잘 넘기고, 개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증권사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