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사기 왕국'을 낳은 '공짜 심보'
단테 알리기에리가 묘사한 <신곡> 지옥 편에는 사기꾼이 득시글거린다. 생전 직업 기준으로는 성직자와 정치인이 지옥 거주민 중 가장 흔하지만, 죄목으로 분류하면 사기범의 수가 압도적이다. 아첨꾼, 허풍쟁이, 위선자, 도둑, 위조범 등의 형태로 주변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뱀의 영혼’들은 지옥의 똥물 속에서 끝없이 허우적댄다. “이 저주받은 영혼아! 이곳에 갇혀 영원토록 통곡하여라!”라는 단테의 외침은 사기 피해자의 절규가 담긴 듯 생생하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단테가 다룬 ‘지옥도’ 속 사기꾼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얼마 전에도 한 사기극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공짜' 권하는 사회


남현희 전 펜싱 국가대표가 재벌 3세를 사칭한 전청조 씨와 얽힌 사건은 소위 ‘막장 드라마’가 무색할 정도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재벌 가문의 혼외자로 개인 은행 계좌 잔액만 51조원에 달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혹해 적잖은 이들이 지갑을 열었다.

여자를 남자라고 믿게 할 정도로 사람의 정신을 쏙 뺀 데에는 초호화 레지던스에 살면서 수억원짜리 고급 차량과 명품 가방을 척척 선물하는 전씨의 ‘경제력’이 큰 몫을 했다. 그 재력이라는 것이 갈취한 돈으로 세운 모래성이라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하지만 허풍쟁이와 야바위꾼, 위조사범의 일인다역(一人多役)을 수행한 전씨의 ‘사기 캐릭터’만으로 황당극의 전말을 설명할 수는 없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피해자’들의 탐욕, 기만행위를 깨달았더라도 애써 현실에 눈감은 ‘공범’들의 허영이 황당극을 지탱한 또 다른 기둥이 아닐까 싶다.

전씨에게 돈을 맡기며 한배를 탔던 이들은 일확천금, 벼락출세, 단박에 상류층으로의 신분 상승을 꿈꿨다. 재벌이 일반인을 만날 일도, 장삼이사로부터 투자금을 빌릴 일도 없다는 상식적 판단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성실의 가치가 폄훼돼서야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사고가 사기 행각에 휘말린 일부에만 해당하는 얘기일까. 주변을 둘러보면 사기 피해자나 대중 대다수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

많은 이가 품은 적게 들이고 혜택은 크게 보길 바란다. 근검절약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둔함의 동의어가 된 지 오래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노력을 반복하는 것은 비효율로 폄하되기 일쑤다. 스스로 어려움을 돌파해 나가기보다는 정부나 사회 혹은 남이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대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창업주’나 ‘기업인’보다 ‘재벌 2·3세’라는 단어가 흔히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대중은 기업인이 어떤 위험을 무릅썼고, 얼마나 힘겨운 노력을 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저 그들이 일군 부(富)만이 탐나고, 과실을 향유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 집단심성이 누적된 사회적 결과가 2012년 23만9720건에서 2020년 35만4154건으로 폭증한 사기 범죄 발생 건수(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다.

허황한 꿈은 아무리 달콤해도 깨고 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뿐이다. 비록 더디고, 당장 성과가 눈에 띄지 않더라도 노력으로 일군 것만이 부를 늘릴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외면한 사회가 그리는 풍경은 협잡꾼으로 가득한 ‘사기 왕국’ 외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