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5일 공연한 연극 ‘의붓자식’ 출연진.
지난 3~5일 공연한 연극 ‘의붓자식’ 출연진.
“근대 최초로 등단한 여성 극작가인데도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한 김명순과 그의 작품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지난 3~5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의붓자식’의 연출가 윤사비나(사진)는 김명순을 향한 집념을 드러냈다. ‘의붓자식’은 김명순 작가(1896~1951)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쓴 동명의 희곡을 무대로 올린 작품이다. 사흘간의 공연이 끝난 뒤 참신한 연출과 깊이 있는 서사 등으로 호평받았다. 종로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는 제6회 ‘종로문화다양성연극제’ 선정작 가운데 하나다.

"역사가 외면한 '조선의 아니 에르노'…김명순을 되살리고 싶어요"
김명순은 작가 나혜석·김원주 등과 함께 대표적 근대 초기 여성 문인으로 꼽힌다. 매일신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며 조선의 세 번째 여성 기자로 기록되는 등의 이력을 가졌지만, 기생 출신 첩의 딸이라는 꼬리표와 일본 유학 중 겪은 강간사건 등으로 문단에서 외면받았다.

윤사비나는 2019년부터 지난 4년간 김명순을 기록하는 데 매진했다. 시작은 또 다른 희곡 ‘두 애인’을 현대적으로 의역하는 작업이었다. 2020년 남산예술센터 ‘서치라이트’와 한국연극 100주년 기념공연 ‘언도큐멘타’, 2021년 ‘인터랙티브 시어터’ 등으로 김명순의 희곡을 알려 왔다.

“김명순 작품은 마치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작품처럼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김명순이란 중요한 작가의 희곡이 무대에 올랐다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의붓자식’을 만들었어요.”

이번 작품은 김명순의 원작 희곡에 그의 수필과 시, 역사적 기록 등을 참고해 완성했다. 작품 속 의붓자매 성실, 부실, 탄실 등 세 자매의 모습에 김명순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600석 정도의 큰 극장인데 객석을 모두 비우고 무대 위에 관객을 위한 의자 100개를 뒀어요. 관객이 제3자로서 김명순의 이야기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 그의 인생을 같이 ‘체험’하도록 만들고 싶었죠.”

윤사비나 연출가는 소수자의 외침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여성을 넘어서 전체 소수자를 반영할 수 있다”며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개인의 꿈과 열정이 무시돼선 안 된다는 뜻이 전달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김명순이 쓴 소설 ‘탄실이와 주영이’를 좀 더 연구해 그의 삶 전체를 다루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며 “장르에 관계없이 김명순의 인생을 오롯이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