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이익을 못 내는 스타트업이라도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지급해 보상할 수 있는 법 개정안이 여당에서 나왔다. 중소벤처기업부, 법무부와 조율을 마친 법안인 만큼 사실상 정부안이다.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스타트업 전략회의에서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대책’이 발표된 이후 후속 조치기도 하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해당 법 개정을 통해 보다 쉽게 우수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6일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성과조건부 주식’ 등으로 불리는 ‘양도제한조건부 주식(RS·Restricted Stock)’을 비상장 벤처기업과 스타트업도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RS는 성과급을 즉시 현금으로 지급하는 대신 수년 뒤 주식으로 주는 제도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재 유치를 위해 이용하면서 한화, 두산, 네이버 등 국내 기업도 확대하는 추세다. 자사주를 활용한 보상 방안으로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돼온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보다 직원 입장에서 유리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스톡옵션은 사전에 정해진 행사가액으로 행사 기간 내에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주가가 기대보다 못 올라 행사가액이 주가보다 높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행사가액에 주식을 사기 위해 직원이 별도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반면 RS는 일정 성과를 달성하면 주식을 지급하는 형태라 당장 돈이 없더라도 주식을 받을 수 있다. 주가가 낮으면 낮은 대로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도 직원 입장에서 유리하다. 대기업들의 RS 발행이 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RS를 도입할 수 없었다. ‘기업은 배당 가능 이익 한도에서만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다’는 상법 341조와 342조가 발목을 잡았다. 직원들에게 RS를 나눠주려면 회사가 먼저 자사주를 취득해야 하는데, 이익을 내지 못하는 스타트업은 자사주 취득부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초창기 스타트업은 RS 발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같은 문제 제기를 수용해 한 의원의 벤처기업법 개정안에는 ‘자본잠식이 일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RS 지급을 위한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비상장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규정이다. 아울러 법 개정안은 기업이 정관에 RS 관련 규정을 기재하고, 그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치면 임직원(특수관계인 제외)과 RS 지급 계약을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환영하고 나섰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스톡옵션만으론 유능한 직원 영입에 한계가 있어 현장에선 RS 조건과 규제 완화 목소리가 컸다”며 “과세 이연 등 세제 혜택에 대한 논의도 구체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연내 소관 상임위 통과를 위해 속도감 있게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늦어도 연말까지 관련 법안을 처리해 내년에는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에서 최근 RS와 관련해 “재벌 경영 세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지분율 10% 이상 대주주에게 지급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규제 움직임이 있다는 점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