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누세라트 난민캠프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헤치며 생존자를 찾고 있는 주민들  /사진=AP
지난 3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누세라트 난민캠프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헤치며 생존자를 찾고 있는 주민들 /사진=AP
이스라엘과 미국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사후 처리 방안을 놓고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에 맞서 전쟁을 선포한 뒤 한 달간의 작전을 벌여 지상군을 가자시티의 핵심지까지 진격시켰다.

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쟁이 끝나면 누가 가자지구를 운영할지 아무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전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전쟁 후 가자지구의 안보를 무기한 보장할 것"이라며 영토 점령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자 미국 백악관은 "가자지구 점령에 반대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대립각을 세운 데 대한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통치에는 반대하지만, 대안이 마땅치 않다고 지적한다. 가자지구 곳곳이 무기 파편과 건물 잔해 등 쓰레기로 덮여 복구 작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가자 주민 100만명 이상이 난민이되 남부로 피난을 떠나거나 병원 마당, 유엔의 학교 등에 머물고 있다. 하마스를 와해시킨 뒤 가자지구를 방치할 수도 없다. 과거 전쟁 후 무질서 속에서 반인륜적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창궐한 이라크의 악몽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1만명이 사망하는 등 주민들의 적개심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이 됐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방문해 파타정부(PA)의 수반 마무드 압바스를 만나 사후 처리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PA가 가자지구를 통치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87세의 압바스는 늙고 부패했으며, 이스라엘에 협조하는 인물이라고 여기고 저항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 국제위기그룹(ICG)의 팔레스타인 전문가 타하니 무스타파는 "압바스는 가자지구는커녕 서안지구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한다"며 "PA가 가자지구를 통치한다는 생각은 코미디"라고 일축했다.

이스라엘의 통치는 주변 중동 국가는 물론 우방국들도 반대한다. 점령은 폭력 사태를 연장할 뿐이란 비판이 나온다.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인권 특별보고관인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이날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근절할 수 있더라도 이스라엘의 점령이 계속되면 또 다른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며 "이는 물리 법칙에 가깝고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조차 가자지구 완전 점령과 통치를 바라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05년 이전까지 가자지구에 주둔했던 이스라엘군은 끊임없는 폭력의 악순환에 지쳐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가디언은 "(과거 팔레스타인 에선)밤이 되면 어린이들이 용돈으로 살 수 있는 조잡한 파이프 폭탄을 들고와 이스라엘군을 향해 던지는 지경이었다"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하면 제네바 협약에 따라 식량과 의료품은 물론 의복, 침구류, 피난처, 기타 점령지 생존 필수품을 공급하는 등 의무까지 부담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