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반출됐다 돌아온 실록·의궤 한자리에…"원본 직접 보세요"
'기록유산의 정수' 1천207점 유물 관리…단장 마친 상설 전시부터 공개
오대산이 품은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에 귀향…박물관 12일 개관(종합)
조선을 세운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은 같은 책을 여러 권 찍어 보관했다.

초반에는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 사고(史庫) 4곳을 운영했으나, 임진왜란(1592∼1598)으로 전주 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는 모두 소실됐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깊은 산속에 사고를 설치한 건 이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산세가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듯하다는 강원 오대산의 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주요 행사를 정리한 의궤(儀軌), 왕실의 족보 등과 같은 주요한 기록물을 보관했다.

오대산 사고에 있던 실록과 의궤가 기나긴 '타향살이'를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실록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10년 만이다.

오대산이 품은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에 귀향…박물관 12일 개관(종합)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 의궤를 보관·전시하는 박물관인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을 이달 12일 정식 개관한다고 9일 밝혔다.

새로 문을 여는 실록박물관은 오늘날의 오대산 사고와도 같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해 온 오대산 사고본 실록 75책과 의궤 82책을 포함해 관련 유물 1천207점을 보관·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박수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이날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조선왕조실록은 쉽게 공개가 안 되지만, 실록박물관에서는 원본을 언제든 직접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대산이 품은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에 귀향…박물관 12일 개관(종합)
박물관 개관에 맞춰 새로 단장한 상설 전시실은 오대산 사고에 있던 실록과 의궤 등 약 80점의 유물을 통해 조선의 기록 문화를 찬찬히 짚는다.

관람객들은 '실록각'(實錄閣), '선원보각'(璿源譜閣)이라 적힌 건물 현판부터 각종 서책을 담았던 상자, 실록을 점검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등을 만날 수 있다.

서정민 학예연구사는 "실록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습기나 충해 방지에 특별히 신경 썼다.

지방 사고라 하더라도 중앙에서 담당자를 보내 체계적으로 관리했다"고 설명했다.

오대산 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이 어떤 특징을 갖는지도 주목할 만하다.

오대산이 품은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에 귀향…박물관 12일 개관(종합)
1913년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돌아온 오대산 사고본 실록 가운데 '성종실록'과 '중종실록'은 글자를 수정하거나 삭제하고 첨부한 부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전쟁 이후 물자 부족으로 일종의 교정본을 그대로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또 다른 조선왕조실록인 정족산 사고본과 비교해보면 조선시대 실록 편찬의 과정이나 각종 교정 부호 사용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조선 왕실의 '행사 보고서'인 각종 의궤도 다양하게 다룬다.

오대산이 품은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에 귀향…박물관 12일 개관(종합)
의궤는 왕실 행사나 국가의 중요 사업이 끝난 뒤 전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자료로, 2011년 일본에서 환수한 오대산 사고본은 모두 19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것이다.

1906년 경운궁을 중건한 공사 과정을 기록한 '경운궁중건도감의궤', 철종(재위 1849∼1863)이 승하한 뒤 국장과 관련한 절차 등을 정리한 '철종국장도감의궤' 등을 선보인다.

의궤에 찍는 도장인 '유서지보'(諭書之寶), 군복을 입은 철종의 모습을 그린 '철종어진'(哲宗御眞) 등도 공개된다.

12일부터 일반 관람이 시작되지만, 당분간은 상설 전시 위주로만 볼 수 있다.

박물관은 기존에 월정사 성보박물관이 운영하던 '왕조·실록의궤박물관' 일부를 새로 단장한 뒤 상설전시실부터 우선 공개했다.

엄밀히 따지면 부분 개관인 셈이다.

오대산이 품은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에 귀향…박물관 12일 개관(종합)
지난 3월 공개된 '국립조선왕조실록 전시관 리모델링 기본계획 수립 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박물관은 2025년까지 총 3단계에 걸쳐 건축·설비 등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올해는 약 13억원을 들여 유물 전시 공간에 설치된 소화설비를 스프링클러에서 소화 가스로 바꿨고, 전시장 전체에 항온·항습 설비와 공조 시설을 정비했다.

내년에는 기획전시실, 수장고 등을 보수·정비할 예정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내년에 약 32억원을 투입해 2단계 (리모델링) 사업에 나설 계획"이라며 "향후 임산부 관련 편의시설, 임시 수장고 등 시설 증축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대산이 품은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에 귀향…박물관 12일 개관(종합)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모든 인연의 귀결이 있고, 생명의 본원이 있었던 자리가 바로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의 불교 용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오대산 사고본 반환에도 앞장서며 역할한 그는 "역사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민속 등이 정밀하게 기록된 실록과 의궤가 전시된 박물관이 역사 교육의 장(場)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전시 도록에 실은 글에서 "오대산 사고의 실록과 의궤에는 우리의 것을 되찾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열망이 담겨 있어 더욱 특별하다"고 앞으로 그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겠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
오대산이 품은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에 귀향…박물관 12일 개관(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