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신라면 더 레드(사진=농심 제공)
농심 신라면 더 레드(사진=농심 제공)
“편의점 매대는 그 시기에 유행하는 소비자의 입맛을 가장 빨리 보여준다.”

유통업계에서 지난 몇 년 새 핵심 채널로 떠오른 편의점을 두고 식품업계에서 하는 말이다. 이처럼 트렌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편의점 매대가 최근 붉게 물들고 있다. 라면에서 시작한 매운맛 경쟁이 과자, 냉동만두 등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거, 치킨, 피자 등 외식기업들도 기존 제품의 매운맛을 한껏 끌어올린 신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라면이 촉발한 매운맛 경쟁

라면·만두·햄버거…다양해진 매운맛 경쟁
9일 유통·식품업계에 따르면 매운맛 경쟁은 올여름 라면업계에서 시작됐다. 농심이 지난 8월 14일 기존 ‘신라면’보다 두 배 이상 매운 ‘신라면 더 레드’를 한정 출시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이 제품이 초반부터 좋은 반응을 끌어내며 80일 만에 1500만 봉 이상 팔리자 농심은 해당 제품을 정식 생산하기로 했다.

‘불닭볶음면’의 삼양식품은 신라면 더 레드 출시 사흘 뒤인 17일 매운 국물라면 ‘맵탱’을 내놨다. 보름 뒤에는 세븐일레븐도 자체브랜드(PB) 제품 ‘세븐셀렉트 대파열라면’으로 이 대열에 합류했다.

○다양해지는 제품들

매운맛 경쟁은 이제 버거, 만두, 치킨으로까지 확산하는 중이다. 버거 프랜차이즈 맘스터치가 8일 내놓은 ‘불불불불싸이버거’도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인 ‘캐롤라이나 리퍼’로 만든 크레이지핫소스를 넣은 버거다. 이 소스는 매운맛의 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지수가 4941SHU로, 기존 ‘불싸이버거’ 소스보다 네 배 이상 맵다.

롯데웰푸드는 기존 매운 만두보다 더 매운 ‘쉐푸드 크레이지 불만두’를 같은 날 내놨다. 스코빌지수 2만3000SHU에 달하는 특제 소스로 맵기를 끌어올렸다.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는 스테디셀러 ‘고추바사삭’ 출시 10주년을 맞아 매운맛을 강화한 ‘마라 고추바사삭’을 6일부터 판매 중이다. 출시 3일 만에 8만 마리 넘게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매운맛 상품이 다양해지자 편의점 GS25에서 판매 중인 상품 가운데 ‘매운’ ‘핫’ ‘스파이시’가 포함된 상품 수는 2021년 117개에서 지난해 142개, 올해(1~10월) 174개로 불어났다. 이 상품들의 올해 1~10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7%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놀이문화가 된 매운맛 도전

‘불황에는 매운 음식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야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캡사이신 성분이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때문에 경기가 어려우면 매운 음식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진다는 게 식품업계의 정설이다.

최근에는 매운맛 상품의 인기를 SNS 발달과 연관해 설명하는 전문가가 많다. 매운 음식을 먹고 SNS에 인증을 남기는 게 젊은 세대에서 놀이 문화로 완전히 정착했다는 것이다. 매운 음식의 붉은빛,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는 모습 등을 영상으로 담으면 조회수가 더 잘 나오는 경향이 있어 짧고 굵은 영상 위주의 SNS에 담을 콘텐츠로 인기가 많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식품기업으로선 매운맛 메뉴가 순한 맛보다 개발도 더 쉽다. 문경선 유로모니터 한국리서치 총괄은 “새로운 것을 놀이로 즐기는 트렌드가 먹거리 영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한국 음식 특성상 매운맛의 강도를 높여 새 제품을 출시해도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도전해볼 수 있어 매운 제품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