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사진=뉴스1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사진=뉴스1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만남을 거절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거듭 몸을 낮추면서 이 전 대표를 향한 '싸가지론'은 더욱 힘을 받는 모습이다. 인 위원장이 이 전 대표의 '외국임 혐오' 논란 이후에도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 이 전 대표의 냉랭한 모습이 더욱 극적 대비를 이뤘다는 평가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최근 잇따라 '싸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이 전 대표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부산까지 찾아온 인 위원장에게 '영어 응대'를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전 대표는 지난 4일 부산에서 열린 토크콘서트로 자신을 찾아온 인 위원장에게 'Mr. Linton'이라고 부르며 "당신은 오늘 이 자리에 올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면박을 줬다. 인 위원장이 귀화한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을 고려해, 정치권에서는 '혐오 정치'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이어 지난 6일에는 '앙숙'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칸막이 하나를 두고 식사하다 '조용히 좀 하라'고 고함을 지른 일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옆 방에서 기자들과 오찬을 하며 자신과 인요한 위원장 만남이 불발된 부산 콘서트 일화를 비판하는 안 의원에게 "안철수씨 식사 좀 합시다!", "안철수씨 조용히 하세요"라며 서너차례 소리를 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는 "20분 동안 듣고 있었는데 대화 내용이 이준석을 욕하는 것이었다"면서 "같은 방에서 식사하던 기자들도 점점 민망해하더라"고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그럼에도 '아버지뻘인 안 의원에게 '안철수씨'가 뭐냐'는 이미지 타격은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싸가지 논란' 속에 일부 이 전 대표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여야 구분 없이 그를 비판하는 것이 정치권 다수의 목소리였다. 민주당 '비명계'로 분류되는 이원욱 의원은 안 전 대표와 식당 상황에 대해 "나도 좀 자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되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넘어가지. 그 자리에서 그냥 소리 지르고 이러지 않는다"며 "그것이 바로 이 전 대표의 혐오 정치, 싸가지 없는 정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앞줄 왼쪽)이 지난 4일 오후 부산 경성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스1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앞줄 왼쪽)이 지난 4일 오후 부산 경성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스1
이 전 대표를 향해 '예의', '인성' 등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를 향한 '싸가지' 공방은 오랫동안 반복됐다.

이 전 대표가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반박했던 내용들만 살펴봐도,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싸가지론'에 휘둘렸는지 알 수 있다.

"흔들고 가만히 있으면 더 흔들고, 흔들고 반응하면 싸가지 없다고 그런다"(2022년 6월), "지금까지 10년 동안 그 조언(싸가지 당부)을 받으면서 제 길을 헤쳐 나왔다"(2021년 9월), "저는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하면 그다음에 이유를 갖다 붙인다고 본다. 저한테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싸가지 없다고 하는 거다"(2021년 6월)

친이준석계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논란 때마다 적극 그를 비호하기도 했다.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지난해 8월 "(지지자들은) 이준석의 싸가지 없음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감쌌고,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해 9월 "결국 이준석의 원죄는 ''싸가지 없다'는 것인데, 이 대표가 국민 앞에 싸가지 없었던 것은 못 봤다. 저나 최재형 의원, 유승민 대표 앞에서도 정말 예의 바르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파란눈의 한국인'인 인요한 위원장인데다, 이 전 대표가 '전직 당대표' 출신의 정치인이기 때문에 논란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상대가 그간 이 전 대표를 '싸가지 없다'며 몰아붙이던 이들과 다르게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영어 면박' 사건 이후인 지난 8일에도 이 전 대표에게 "돌아와서 화합하면 중책을 맡아서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산에서 이 전 대표와 대화가 불발된 것에 대해서도 "문전박대를 당한 건 아니다"며 "어쩔 수 없이 불쑥 갔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조금 더 예의를 갖추고 가겠다"고 했다. 이어 "(이 전 대표가) 많이 마음이 아프고, 한이 많이 차 있다"며 "계속 찾아가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설득해야겠다"고 했다.

이 전 대표가 단순한 한 명의 '청년 정치인'이었던 때와는 또 상황이 달라졌다는 시각도 있다.

이준석 대표 시절 청년 최고위원을 지냈던 김용태 전 청년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 이 전 대표를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 전 청년 최고위원은 한경닷컴과 통화에서 "당 대표로 당선이 됐었지 않나. 그렇다면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당 대표는 지도자이고, 지도자를 바라보는 국민의 수준이나 눈높이가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전 대표가 과거처럼 행동하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지도자다운 언행과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