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7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면담을 마친 뒤 차에 탑승해 취재진들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모습. / 사진=뉴스1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7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면담을 마친 뒤 차에 탑승해 취재진들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모습. / 사진=뉴스1
"'듣보잡'들 때문에 싫어!"

가죽 재킷을 입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시청까지 찾아와 "좀 도와주세요"라고 읍소하는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 소위 '철벽'을 치며 돌려준 말이다.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뜻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평소 거침없는 말투로 '홍카콜라'라는 별명을 가진 홍 시장의 이번 발언도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홍 시장은 지난 8일 당 통합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대구시청을 찾은 인 위원장에게 "듣보잡들 때문에 싫다. 듣보잡들은 내년에 다 자동으로 정리될 것이고, 정리된 뒤 새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선에 일체 관여하지 말라고 다 죽여놨는데, 지금 와서 총선에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재차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8일 대구 북구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면담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홍준표 대구시장과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8일 대구 북구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면담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홍 시장은 약 15분간의 대화에서 듣보잡이라는 표현을 총 7번 사용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듣보잡들이 너무 설친다", "대통령 믿고 초선이나 원외 애들이, 듣보잡들이 나서서 중진들 군기 잡고 설치는 바람에 이 당의 중진의 역할이 없다", "얼마나 많은 듣보잡들이 나서서 (이준석 전 대표를) 조리돌림을 했냐", "성 상납이라는 터무니없는 주홍글씨를 써서 딱지 붙이고, 듣보잡 동원해서 그걸 경찰에 고발하게 하고" 등이다.

홍 시장이 듣보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2022년 5월 18일 자신의 지지자 소통 채널인 '청년의꿈'에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버릇없다"고 한 적은 있으나, 비하의 핵심인 '잡'이 빠졌다.

그렇다면 홍 시장이 생각하는 듣보잡은 누구일까. 친윤(친윤석열)계 초선 의원·원외 인사·지도부 등을 싸잡아 비판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홍 시장의 족적을 통해 적지만 구체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후보 1. '김기현 지도부'

2023년 3월 8일 당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등 지도부가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손을 들어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김병언 기자
2023년 3월 8일 당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등 지도부가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손을 들어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김병언 기자
홍 시장은 지난 10월 29일 듣보잡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듣보잡들이 당권 잡았다고 설친다"고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했다. 여기서 "당권 잡았다고 설친다"는 대목으로 첫 번째 후보는 '김기현 지도부'라는 해석이 나온다.

홍 시장이 김기현 대표 체제 지도부에 앙심을 품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는 지난 4월 13일 '당 상임고문 해촉' 사건이 꼽힌다. 홍 시장은 지난해 10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상임고문으로 위촉됐다.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김재원 최고위원 등에 대한 당 지도부의 안일한 대응을 놓고 "도대체 무슨 약점을 잡혔냐"는 둥 맹비판하다가 김 대표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데 이어 결국 해촉됐다.

설전이 오가는 과정에서 몇몇 지도부 인사들은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해 홍 시장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이들 역시 홍 시장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홍 시장은 당을 향해 강력한 비판을 쏟아내면서도 "(나는) 이 팀(당 지도부)이 아니라 내년에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나머지 정치를 해야 할 사람"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는 김기현 지도부가 2025년 3월까지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으로 해석된다. 지난 10월 29일 "당권 잡았다고 설치는 듣보잡들, 내년 총선 후면 너희들은 국민들이 다 정리해준다"는 글과 같은 맥락이다.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은 홍 시장의 지도부를 향한 듣보잡 발언이 나온 뒤 "원색적인 표현이 동원됐다"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로 뭉쳐 난국을 타개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껏 당을 지켜주신 그 마음으로 조금 더 지켜봐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는 논평을 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인 위원장과의 자리에서 듣보잡 발언이 나온 데 대해 "인 위원장도 홍 시장 말의 취지에 공감했을 것이고, 당 구성원도 모두 홍 시장이 어떤 말을 하려는지 취지에 공감하는 상황"이라며 "이런저런 것들이 잘 버무려지면서 혁신위에서 좋은 의견이 올 것이고 당에서도 충분히 반영될 거로 본다"고 평가했다.

후보 2. '강신업'?

강신업 변호사가 2022년 7월 28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성상납 의혹과 관련 참고인 조사에 앞서 브리핑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강신업 변호사가 2022년 7월 28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성상납 의혹과 관련 참고인 조사에 앞서 브리핑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홍 시장은 인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준석 전 대표 주제로 이야기하던 중 "(이 전 대표를) 얼마나 많은 듣보잡들이 나서서 조리돌림을 했냐"며 "성 상납이라는 터무니없는 주홍글씨를 써서 딱지 붙이고, 듣보잡 동원해서 그걸 경찰에 고발하게 하고, 수사하게 하고, 그런 식으로 모욕을 주고 조리돌림을 했는데 이 전 대표가 지금 돌아오겠나. 돌아오면 진짜 배알도 없는 놈이 된다. 쉽게 못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마음을 돌리려는 인 위원장에게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조언하는 내용이지만, 여기서도 홍 시장이 머릿속에 있는 듣보잡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전 대표를 성 상납 의혹과 관련해 수사기관에 고발한 건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와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 팬클럽 회장 출신인 강신업 변호사다. 단, 사준모와 가세연은 이 전 대표를 검찰(각각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기 때문에 이들을 제외하면 강 변호사만 남게 된다.

이 전 대표에게 성 접대를 했다고 주장하는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의 변호를 맡았던 강 변호사는 2022년 7월 28일 "이준석 대표가 김세의 전 MBC 기자와 강용석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에 대한 무고죄"라면서 이 대표를 무고죄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강 변호사는 홍 시장과도 여러 차례 얼굴을 붉혔던 인물이기도 하다. 홍 시장은 2022년 8월 24일 강 변호사가 회장으로 있던 김건희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동선이 공개된 것을 비판하면서 "이상한 사람(강 변호사)이 영부인 팬카페 회장이라고 하며 정치권에 온갖 훈수까지 하더니 이제 대통령의 동선까지 미리 공개하는 어처구니없는 짓들도 한다"고 쏘아붙였다.

이에 강 변호사는 홍 시장을 향해 "아가리를 닥쳐라"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바다. 강 변호사는 홍 시장의 상임고문에서 해촉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도 "전광훈 목사와 통화한 결과 홍준표 퇴치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같이 했다"며 "(지금 홍 시장 행위는)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실상 대선 불복이자 내심 윤 대통령 탄핵을 내심 바라고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준표가 지목한 '듣보잡'은 누구인가 [이슈+]
강 변호사는 지난 8일 오후 12시 59분 홍 시장이 인 위원장을 만나 듣보잡 발언을 한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페이스북에서 "홍준표는 지 빼놓고는 다 듣보잡이란다. 내가 보기엔 당신이야말로 허접 푼수 듣보잡이다. 아가리 닫아라. 플리즈!"라고 반발했다.

후보 3. '尹 멘토' 신평

신평 변호사. / 사진=신 변호사 페이스북
신평 변호사. / 사진=신 변호사 페이스북
홍 시장이 에둘러 표현하는 것 없이 듣보잡이라고 직격한 인사도 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면서 정치 현안에 논평을 해오던 신평 변호사다.

신 변호사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서 홍 시장의 듣보잡 발언을 겨냥해 "상석에 앉아 아랫사람 다루듯이 정제되지 않은 언사를 함부로 뱉어낸 것이 바로 이 점에서 그가 갖는 명확한 한계를 잘 보여준다"며 "일본말로 '탕끼'(短氣)의 소유자인 그는 성격적 결함으로 정치인의 궁극적 목적인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 일'에는 약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홍 시장의 지지자는 신 변호사의 해당 글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청년의꿈'에 올려 홍 시장에게 알렸다. 이에 홍 시장은 이런 댓글을 남겼다.

"자칭 대통령 멘토 듣보잡."
홍준표가 지목한 '듣보잡'은 누구인가 [이슈+]

"감정으로 표출해서 되겠나" 듣보잡 발언, 의원들 반응은

정치권에서는 홍 시장의 듣보잡 발언을 '이해한다'면서도 그가 도지사, 당대표, 대선후보 등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인 만큼 '아쉽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온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홍 시장 같은 경우 대권 후보도 하셨고 당대표에서부터 다 하신 당의 원로다. 직선적인 성격이시니까, 거침없이 얘기하시는 분이니까, 시원시원하게 하셨지 않나 생각한다"면서도 "정치는 개인적 서운함이나 또 손해가 있더라도 그게 감정으로 표출돼선 안 된다. 감정이 표출되게 되면 정치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손해 보거나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정치적 자산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홍 시장 말투가 자극적이고 '탁' 치는 반응을 잘하시는 분"이라며 "지난번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소위 말해서 이 감정적인 앙금이 남아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겨냥하지 않았나, 특히 지금 대통령 주변에 있는 분들 중에 과거 홍준표 대표 최측근이라고 분류되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에 대한 앙금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았다고 사석에서 그런 말씀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금까지 쌓인 불편한 감정을 보다 잘 드러내려고 듣보잡이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감정적으로 격양된 것 같은데 식힐 필요가 있다. 같은 당의 당원들 아닌가"라고 말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