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왼쪽 다섯 번째)이 9일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서 열린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에서 참석자들과 첫 삽을 뜨고 있다. 왼쪽부터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 무함마드 알 카타니 사우디 아람코 수석부사장, 김두겸 울산시장,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CEO, 윤 대통령, 아민 나세르 아람코 CEO, 손경익 에쓰오일 노조위원장, 이재훈 에쓰오일 이사회 의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왼쪽 다섯 번째)이 9일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서 열린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에서 참석자들과 첫 삽을 뜨고 있다. 왼쪽부터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 무함마드 알 카타니 사우디 아람코 수석부사장, 김두겸 울산시장,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CEO, 윤 대통령, 아민 나세르 아람코 CEO, 손경익 에쓰오일 노조위원장, 이재훈 에쓰오일 이사회 의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범준 기자
9조 원을 투자해 한국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설비를 짓는 ‘샤힌 프로젝트’가 인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업계는 하루 최대 1만7000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며 외국인 채용 규제 완화를 요청하고 있지만 정부는 플랜트 공장이 국가 보안 시설로 분류돼 어렵단 입장이다.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에서 “규제를 과감하게 개선하겠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에도 부처 간 ‘핑퐁게임’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단 지적도 나온다.

10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플랜트 업계 숙원 사업인 외국 인력 고용에 관한 논의가 수년째 지지부진한 상황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 열릴 예정인 국무조정실장 주관 외국인력정책위원회 안건 상정 여부도 불투명하다. 비자 발급과 인력 수요 조사 등에 수개 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 채용이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분석이다.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인력 수급과 도입 업종 확대 등 외국 인력 정책 전반 결정하는 위원회다.

플랜트 업계는 그동안 석유화학 설비 공사에 외국인 고용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고용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본공사에도 차질이 빚어진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플랜트 시설은 발전소와 제철소와 함께 국가 보안 시설로 분류돼 2007년부터 외국인 고용이 금지됐다.

국무조정실과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가 나서서 이 규제를 풀어야 하지만 책임을 서로 떠밀고 있다. 산업부는 “건설 업계의 규제 문제이기 때문에 국토부가 결정을 해야한다”는 입장이고 국토부는 “보안 시설 해제가 필요하다”며 산업부의 결단을 요구한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아직 부처 간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풀어야 할 사안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샤힌 프로젝트는 에쓰오일이 9조2580억원을 투자해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지난 3월 기공식에 윤 대통령이 직접 첫 삽을 뜨기도 했다.

“해외 석유화학 공장은 외국인을 전체의 80% 이상 채용하지만 기술이 유출 사례는 없었습니다.”
플랜트 업계 관계자는 10일 보안 시설이란 이유로 17년째 막혀있는 석유화학 업계의 외국인 채용과 관련해 “기술 유출이 문제라면 해외 플랜트 시설에서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건설 업계는 연 10만~15만 명의 인력이 항상 부족하다”며 “단순 노무를 할 인력이 필요한데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만성 인력난에 불만 폭발

플랜트 업계가 만성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채용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논의가 제자리 걸음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루 최대 1만7000명이 필요한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사업 역시 인력 수급 계획을 짜지 못해 정부의 움직임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인 고용이 금지된 플랜트 업계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역시 이에 동의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 업계에 165만 명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실제 공급은 150만 명 정도만 되고 있다”며 “플랜트 업계 역시 비슷한 비율로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짓고 있는 경기 평택사업장 한 곳에서만 건설 인부 5만여 명을 빨아들여 이외 지역의 인력난은 더 심각해졌다.

석유화학 공장이 국가 보안 시설인지도 불분명하다. 2004년 외국인 고용을 위한 산업연수생제도 도입 당시 석유화학 분야 역시 외국인 근로자가 일을 했다. 하지만 2007년 산업연수생 제도 대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석유화학 분야는 국가 보안 시설로 지정됐다.

당시 정부 협상에 참여한 대한건설협회 등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측이 “내국인 일자리 보호와 보안 강화를 위해 플랜트 분야는 외국인 고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발전소와 제철소, 석유화학 업종을 국가 보안시설로 묶자는 주장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오치돈 대한기계설비산업연구원 연구원은 한 보고서에서 “단순 노무직을 맡는 외국 인력이 기술을 유출하긴 쉽지 않다”며 “2004~2006년에도 발전소 등에 외국 인력이 일했지만 기술 유출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나서야 하지만...

업계에선 정부 부처가 직접 나서서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요지 부동이다. 외국인 고용이 가능토록 하려면 국무조정실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외국인력정책 위원회에서 취업 승인 업종을 늘려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 위원회 참여 부처가 합의를 해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막혀있다.

우선 국가 안보 시설에서 해제되려면 산업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산업부 측은 건설 업계 문제가 엮여 있어 국토부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반대로 국가 안보 시설 해제가 우선이란 주장이다. 다만 고용부는 플랜트 업계의 외국 인력 수급에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처 간 협의를 조율하는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할 부분이 아직 남았다”며 “해당 안건을 최대한 빨리 상정토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선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나온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인력이 많이 필요해진 조선업은 작년부터 전 부처가 달려 들어 외국인력 공급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조선업을 위해 특별 비숙련 취업(E-9) 비자 쿼터제를 만들어 올해 5000명을 추가 배정한 게 대표적이다. 조선업에 투입된 외국인력만 올해 1만4359명에 달한다.

김우섭/곽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