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사들의 모습./사진=허문찬 기자
여의도 증권사들의 모습./사진=허문찬 기자
"공매도 세력한테 돈 받아먹고 기사 쓰냐."
"넌 이제 국민들한테 찍혔다. 공매도 앞잡이."

요즘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받는 산업부·증권부 기자들이 늘었다. 주로 개인 투자자들이 이메일을 통해 다짜고짜 험담과 욕설을 퍼붓는다. 자신이 투자한 종목이나 공매도 찬·반을 다룬 기자들이 이들의 표적이다.

2차전지 종목이 주목받으면서 이 같은 이메일은 더 잦아졌다. 애널리스트도 비슷한 처지다. 에코프로 보고서를 쓴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대낮 여의도 한복판에서 투자자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움츠러드는 애널리스트가 늘면서 자본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하나증권 모 애널리스트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IFC몰 인근에서 '박지모'(박순혁을 지키는 모임) 카페 회원들의 항의를 받았다. 이들은 애널리스트를 향해 "돈 받았냐", "매국노"라며 비난하고 가방을 붙들거나 길을 막아서기도 했다.

그는 지난 8일 '인기 투표와 저울'이란 보고서를 내고 에코프로의 목표주가를 55만5000원에서 42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사실상 '매도 리포트'다. 2차전지 업체인 에코프로의 3분기 영업이익이 6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 줄어든 만큼 목표가도 낮춘 것이다.

박지모는 요즘 여의도를 휘젓고 다니며 항의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박지모는 이른바 '밧데리 아저씨'로 통하는 박순혁 전 금양 홍보이사의 팬카페 회원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박 전 이사가 추천한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등 2차전지 종목에 대한 정보 교환을 넘어서 집단 행동도 불사한다.

이들은 "공매도를 막아달라"며 금감원과 특정 증권사를 상대로 릴레이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여기에 특정 기자와 개인의 정보를 카페에 공유하면서 집단 괴롭힘을 독려하고 나서고 있다. 자신들 카페와 관련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관련 기자 소속 언론사에 항의 전화 걸기, 이메일 보내기 등을 독려한 바 있다.

"공매도와 결탁해 2차전지 종목에 악의적 기사나 보고서를 썼다"며 기자·애널리스트를 괴롭히지만 근거는 없다. 이들의 공격을 받은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금감원 조사까지 받았지만 아무 혐의도 나오지 않았다.

극성 개미들은 갈수록 과격해지면서 '홍위병'식 움직임으로 흘러가고 있다. 집단 항의는 물론 대낮에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집단 린치까지 가하고 나선 것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요즘 못 해 먹겠다는 애널리스트들이 늘었다"며 "매도보고서 안 쓴다고 난리를 치는 한편 목표가 하향 보고서를 쓰면 개인들이 공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제도와 분위기 탓에 한국 금융시장이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한숨을 내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일 공매도 시장을 설명하면서 '깨진 유리창' 이론을 언급했다. 자동차의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그 주변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한다는 이론이다. 자본시장을 좀먹고 합리적 토론·분석을 막는 극성 개미들을 '깨진 유리창'에 빗댄 사람들도 늘고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