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구매 결정짓는 건 성능 아닌 습관"
<로저 마틴의 14가지 경영 키워드>는 로저 마틴 캐나다 토론토대 로트만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글들을 다듬어 실은 책이다. ‘통합적 사고’와 ‘디자인적 사고’라는 개념을 창시한 유명 경영학자인 그는 이 책에서 쓴소리를 쏟아낸다. 그는 ‘경영의 지혜’라고 일컬어지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경쟁, 주주, 고객, 전략, 데이터, 문화, 기획, 인재 등 경영과 관련한 여러 개념을 되돌아본다.

경쟁에 관해 마틴 교수는 “경쟁하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그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이며 “경쟁은 본사 건물이 아니라 일선 업무 현장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최고경영자(CEO)와 본사 전략가들은 항상 현장과 가까워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가 2000년대 중반 한 메이저 자동차 회사의 경영 자문을 맡았을 때다. 이 회사는 모든 중역에게 새로 출시된 자사 자동차를 보내줬다. 차량은 완벽히 청소되고, 서비스 점검이 완료된 상태로 연료까지 가득 주입된 채 회사 지하의 개별 주차 공간에 배송됐다. 그 결과 회사 고위 임원들은 고객이 차량을 구매하려고 돈을 모으고, 서비스를 받고, 차량을 운행하는 과정에서 체험하게 될 모든 경험을 생생히 느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고객에 대해서는 “고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다. 기업은 더 좋은 성능과 디자인으로 제품을 내놓으면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고객은 모든 것을 따져볼 만큼 한가하지 않다. 마틴 교수는 “구매 행위는 습관의 창조물”이라고 말한다. “만약 고객의 마음속에 ‘타이드 세제가 옷이 깨끗하게 세탁되고,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쉽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굳어지면, 쇼핑할 때 가장 쉽고 친숙한 방법은 타이드를 재구매하는 것이다.” 이런 소비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게 기업엔 중요하다.

‘타이드’로 유명한 P&G는 액체 세제가 개발되자 1975년 ‘에라’라는 새로운 액체 세제 브랜드를 내놨다. 액체 세제 소비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에라는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P&G는 실수를 깨닫고 1984년 ‘리퀴드 타이드’를 출시했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리퀴드 타이드는 시장을 지배하는 액체 세제가 됐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