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미래의 문'을 열기 위해 한국이 가져야할 10가지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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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퀘스트 2024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외 지음
포르체 / 424쪽│1만9800
원미래 관찰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지음
포르체 / 468쪽│2만1000원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외 지음
포르체 / 424쪽│1만9800
원미래 관찰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지음
포르체 / 468쪽│2만1000원
대한민국 경제 성장은 국민들의 악착같은 노력과 더불어 여러 요인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산업 구조였다. 공업화의 첫발을 뗀 1960년대만 해도 지구촌 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이었다. 선진국들의 생산물을 눈으로 보면서 쫓아갈 수 있었다.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가격 경쟁력을 강화해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힘들게 축적한 자본력을 반도체산업에 투자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만약 이제 와서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나섰다면 승산은 크게 낮았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경제 대국에 진입했지만 갈 길은 아직도 멀다.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면 지금의 위치를 잃는 건 한순간이어서다. 이것이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그랜드 퀘스트 2024>란 책을 낸 이유다. <축적의 시간> 등으로 유명한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총괄 기획했다.
세계적 수준의 싱크탱크가 되겠다는 목표로 2022년 2월 개원한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한국이 확보해야 할 미래 기술 10가지를 담은 <그랜드 퀘스트 2024>와 미래 세대가 고민해야 할 사회적 질문을 담은 <미래 관찰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등 2권의 책을 첫 성과물로 내놨다.
10가지 기술 중 첫 번째는 초미세·초저전력 반도체 개발이다. 기존 반도체는 이제 성능 개선이 한계에 다다랐다. 새로운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반도체 강국 한국’도 옛말이 될 위험에 처했다. 문제는 한국의 연구자들은 지금의 반도체 문제를 개선하는 과제에만 몰두해 있다는 점이다.
김장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현재 초저온·초전도 반도체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거의 없다”고 했다. 연구비를 얻기도, 논문을 쓰기도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김상범 재료공학부 교수는 “기존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의 실력이 압도적으로 우수하지만 초전도나 아날로그 등 미래 지향적인 분야에서는 중국이 꽤 앞서며, 심지어 일부 영역에서는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배터리, 효소 모방 촉매, 환경 적응적 로봇, 체화 인지 인공지능(AI), 추론하는 AI, 동형암호, 항노화 기술, AI 기반 항체 설계, 양자정보과학 등도 중요 기술로 꼽혔다. 환경 적응적 로봇이란 사람처럼 주변 환경을 느끼는 로봇을 말한다. 물건을 들 때 사람은 너무 무거우면 포기한다. 로봇 팔이 달린 드론은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자기 능력을 초과하는 줄 모르고 옮기다가 그대로 추락해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정동 교수는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철강에서부터 인터넷 포털까지 전방위적인 산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전 세계에 몇 없는 나라”라며 “이는 그랜드 퀘스트를 추구해 나갈 때 여러 과학기술 분야와 각 산업 분야에서 축적된 역량을 동원하고 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 곳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서울대 학부·대학원생들이 참여한 ‘미래 세대 토론회’의 결과물인 <미래 관찰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는 결이 다르다. 사회적 측면에서 미래를 바라본다. ‘관심’이나 ‘집중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의(attention)를 어떻게 우리가 되찾을 수 있는가를 시급한 과제로 지목한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에 시간을 빼앗기고, 심지어 우리의 판단력마저 잠식당하는 현 상황을 우려한다. 헌법이 자유권, 생명권, 평등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앞으로는 사람들의 ‘주의 소유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측면에서 대한민국이 ‘기계 인간 사회’가 돼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람이 기계처럼 완벽해야 한다고 보는 사회다. “한국 사회는 ‘실수’에 굉장히 예민하다. 업무에서 실수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제는 이를 넘어 삶의 전반에 걸쳐 마치 기계처럼 단 하나의 도덕적 실수마저 해선 안 되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 튀는 행동이나 새로운 시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혁신과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책이 그리는 미래는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다. 예컨대 AI 시대에는 노동량이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본다. AI에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람이 정보를 독점하며 ‘신(新)중세사회’가 펼쳐질 수 있다고도 말한다. 물론 미래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책은 지금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힘들게 축적한 자본력을 반도체산업에 투자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만약 이제 와서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나섰다면 승산은 크게 낮았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경제 대국에 진입했지만 갈 길은 아직도 멀다.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면 지금의 위치를 잃는 건 한순간이어서다. 이것이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그랜드 퀘스트 2024>란 책을 낸 이유다. <축적의 시간> 등으로 유명한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총괄 기획했다.
세계적 수준의 싱크탱크가 되겠다는 목표로 2022년 2월 개원한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한국이 확보해야 할 미래 기술 10가지를 담은 <그랜드 퀘스트 2024>와 미래 세대가 고민해야 할 사회적 질문을 담은 <미래 관찰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등 2권의 책을 첫 성과물로 내놨다.
10가지 기술 중 첫 번째는 초미세·초저전력 반도체 개발이다. 기존 반도체는 이제 성능 개선이 한계에 다다랐다. 새로운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반도체 강국 한국’도 옛말이 될 위험에 처했다. 문제는 한국의 연구자들은 지금의 반도체 문제를 개선하는 과제에만 몰두해 있다는 점이다.
김장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현재 초저온·초전도 반도체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거의 없다”고 했다. 연구비를 얻기도, 논문을 쓰기도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김상범 재료공학부 교수는 “기존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의 실력이 압도적으로 우수하지만 초전도나 아날로그 등 미래 지향적인 분야에서는 중국이 꽤 앞서며, 심지어 일부 영역에서는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배터리, 효소 모방 촉매, 환경 적응적 로봇, 체화 인지 인공지능(AI), 추론하는 AI, 동형암호, 항노화 기술, AI 기반 항체 설계, 양자정보과학 등도 중요 기술로 꼽혔다. 환경 적응적 로봇이란 사람처럼 주변 환경을 느끼는 로봇을 말한다. 물건을 들 때 사람은 너무 무거우면 포기한다. 로봇 팔이 달린 드론은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자기 능력을 초과하는 줄 모르고 옮기다가 그대로 추락해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정동 교수는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철강에서부터 인터넷 포털까지 전방위적인 산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전 세계에 몇 없는 나라”라며 “이는 그랜드 퀘스트를 추구해 나갈 때 여러 과학기술 분야와 각 산업 분야에서 축적된 역량을 동원하고 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 곳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서울대 학부·대학원생들이 참여한 ‘미래 세대 토론회’의 결과물인 <미래 관찰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는 결이 다르다. 사회적 측면에서 미래를 바라본다. ‘관심’이나 ‘집중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의(attention)를 어떻게 우리가 되찾을 수 있는가를 시급한 과제로 지목한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에 시간을 빼앗기고, 심지어 우리의 판단력마저 잠식당하는 현 상황을 우려한다. 헌법이 자유권, 생명권, 평등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앞으로는 사람들의 ‘주의 소유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측면에서 대한민국이 ‘기계 인간 사회’가 돼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람이 기계처럼 완벽해야 한다고 보는 사회다. “한국 사회는 ‘실수’에 굉장히 예민하다. 업무에서 실수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제는 이를 넘어 삶의 전반에 걸쳐 마치 기계처럼 단 하나의 도덕적 실수마저 해선 안 되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 튀는 행동이나 새로운 시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혁신과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책이 그리는 미래는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다. 예컨대 AI 시대에는 노동량이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본다. AI에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람이 정보를 독점하며 ‘신(新)중세사회’가 펼쳐질 수 있다고도 말한다. 물론 미래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책은 지금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