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자연주의 화가' 장욱진 그림을 닮은 음악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둘러봤다. 장욱진 화백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 2, 3층 전관에 걸쳐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삽화, 도자기 그림 등 그의 방대한 작품 수만큼이나 폭넓은 화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사이사이 혹은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구조물에는 화백의 어록을 새겨놨는데 그의 예술관, 성정을 엿볼 수 있었기에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다. 장 화백은 1975년 <강가의 아틀리에>라는 제목의 화문집을 출간했고, 1986년에는 개정판을 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서점에 들러 그 책을 구매했다. 서문에 ‘나의 글은 그림에서 드러나 보이지 않는 사고방식을 풀어쓴 것’이란 구절이 나온다. 그림도, 글도 장르만 다를 뿐 그에게는 예술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자 일상 속 사유와 경험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한지 재질의 하드 커버로 만들어진 묵직한 책을 펼쳤다. 목차를 쭉 훑어보다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강가의 아틀리에에서’ 챕터를 가장 먼저 읽었다. 자연 속에서 물아일체의 삶을 살다 간 화백답게 작업실 근처의 아름다운 자연을 찬미하고, 작업 과정에서 느낀 고독과 몰입을 담백한 문체로 써놓은 글이다. 살짝 생기가 사그라든 오후의 햇빛이 강가의 잔잔한 수면에 반사돼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듯한 이미지가 글에서 자연스럽게 풍겼다.

특히 “저 멀리 노을이 지고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적막한 자연과 쓸쓸함을 누릴 수 있게 마련해 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란 마지막 문단은 소박하지만 투명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때맞춰 피고, 맺고, 지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작품 속 모티브로 삼았던 장욱진 화백. 그의 작품 속 자연과 닮은 음악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총 14곡으로 이뤄진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가장 유명한 13곡 ‘백조’다. 생상스가 일상의 스트레스를 피해 휴가차 들른 소도시에서 만난 친구들과 친목 삼아 연주하려고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는 이후 그의 대표작이 됐다.

하지만 당시의 생상스는 이 장난스러운 곡으로 자신이 진지한 예술가로 비치지 않을 것을 염려해 ‘백조’ 악장을 제외하고는 출판 및 공개 연주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비치는 햇빛과 처음 비치는 달빛 사이,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를 묘사하는 듯한 서정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인 이 곡에서 고요히 물살을 가르는 백조의 모습은 첼로 파트가, 투명한 호수 위의 윤슬은 피아노 파트가 맡았다.

장욱진이 주요 모티브로 삼은 ‘봄’은 새로운 시작, 한 번 더 주어진 기회, 노란색과 닮은 희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현대음악 작곡가 에이나우디가 2008년 작곡한 ‘프리마베라’는 조금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품은 대개 몽환적이면서도 격정적이고, 개성이 강하면서도 대중을 매혹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녘, 길을 따라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을 비추는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이 곡의 도입부는 여리게 지속음을 연주하는 현악기 위로 피아노가 담담하게 독백을 이어 나간다. 몰아치는 비바람을 묘사하는 비발디의 하강 음계가 들리며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다시 한 번 도입부의 분위기를 재현하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