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의 2단계 노림수
요르단의 라니아 왕비가 최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해 언급했다. 라니아 왕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극적인 상황을 설명하면서 “요르단을 포함한 중동 전역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앙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에 충격과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최근 우리는 확연한 ‘이중 잣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하마스가) 총부리로 가족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지만 (이스라엘이) 폭격으로 몰살시키는 건 괜찮다는 뜻인가”라고 말했다.

고의성 짙은 하마스 계획

당연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명은 소중하다. 하지만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사망자 규모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참혹한 사진과 숫자의 선전전에 빠지게 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이 2단계에 돌입했다고 지난달 말 선언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이 말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하마스에도 적용된다. 하마스가 지난달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해 참상을 일으킨 건 하마스 계획에서 1단계다. 이스라엘이 맞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걸 인지하고서도, 이를 선전에 이용하려는 게 하마스의 2단계 계획이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민간인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충분한 조처를 하고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마스의 행동 역시 팔레스타인 민간인 보호와는 거리가 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민간인에게 전쟁터가 될 북부에서 떠나라고 경고했을 때, 하마스가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한 것만 봐도 그렇다.

하마스는 조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가자지구에 정교하게 땅굴을 파 놓았다. 하마스는 민간인을 위해 이 같은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탄약 저장고 등 군사시설을 학교·병원·이슬람 사원 밑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공격할 때 많은 민간인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민간인 사망 늘면 하마스 유리

하마스의 전쟁 2단계에서 놀라운 사실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더 많이 사망할수록 하마스의 상황은 유리해진다는 점이다. 정치학자 마이클 왈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는 최근 기고한 글에서 자신도 라니아 왕비처럼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이스라엘군이 큰 위험을 감수하고 일반인 보호를 우선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사망을 초래하는 이스라엘과 애초에 민간인을 표적으로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하마스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독일 드레스덴을 폭격해 많은 민간인 희생이 있었다. 독일 나치는 자신들의 범죄나 연합국의 폭격이 별다른 바 없다고 주장했지만,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이라는 군사적 목적 때문에 민간인이 희생됐다면, 나치는 민간인 그 자체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민간인을 이용해 자신들이 희생자라고 주장한다. 라니아 왕비와 유엔, 미국의 명문대에서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차이를 분명히 구분하는 게 도덕적 판단의 출발점이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Hamas’s Second-Stage Strategy’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