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친환경 전환 잇단 '속도 조절'…넷제로 행보 제동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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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불확실…탄소정책 자성론
GM·포드·테슬라 美 전기차업체
향후 목표 생산량 잇달아 줄여
에너지 기업도 모종의 반란 조짐
셰브런 등 석유기업 잇단 합병
셸은 저탄소·수소사업부문 축소
기술적 난관도 탄소중립 걸림돌
레고는 페트병 재활용 방안 포기
GM·포드·테슬라 美 전기차업체
향후 목표 생산량 잇달아 줄여
에너지 기업도 모종의 반란 조짐
셰브런 등 석유기업 잇단 합병
셸은 저탄소·수소사업부문 축소
기술적 난관도 탄소중립 걸림돌
레고는 페트병 재활용 방안 포기
넷제로(탄소중립)를 향한 여정에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영국과 스웨덴 등은 정부 차원에서 탄소 감축 정책을 일부 후퇴시키는가 하면 글로벌 대기업도 친환경 전환의 속도 조절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물가·고금리로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진 만큼 그간 내세웠던 탄소 감축 방안들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내년 중반까지 전기자동차 40만 대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전기차의 생산 목표를 제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전 세계 전기차 수요도 예상보다 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GM은 일본 혼다와 2027년부터 대중적 전기차를 만든다는 계획도 백지화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쉐보레 이쿼녹스 EV, 실버라도 EV 등 출시 예정인 전기차 모델의 생산을 수개월 연기하기로 했다.
미국의 또 다른 자동차업체 포드도 SK온과 합작 투자한 미국 켄터키주의 두 번째 배터리 공장 가동을 연기하는 등 당초 계획된 전기차 투자액 중 120억달러(약 16조원)를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테슬라가 시작한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생산능력 확충과 수익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넷제로 추진과 직결되는 에너지업계에서도 모종의 반란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 에너지업계 1~2위를 다투는 엑슨모빌과 셰브런은 지난달 연달아 대형 인수합병(M&A)을 발표했다. 엑슨모빌은 미 셰일업체 파이오니어를 595억달러에 인수하고, 셰브런은 석유개발업체 헤스를 530억달러에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이번 거래들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피크 오일’ 전망을 무색하게 하는 행보라는 분석이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위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환에 나서면서 ‘석유 시대는 머지않아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계속됐지만, 에너지 기업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빅딜을 성사시켰다.
유럽 에너지 대기업 셸은 저탄소·수소 사업부문을 축소하기로 했다. 수소 에너지 등 저탄소 에너지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셸은 저탄소 솔루션 부문(LCS) 인력의 15%를 감원하고, 수소 사업 규모를 축소할 예정이다. 가장 크게 개편되는 사업부는 수소 사업이다. 셸은 에너지 기업 중 수소 사업을 선도해왔다. 지난해 네덜란드에 유럽 최대 규모인 연간 200㎿(메가와트)짜리 전해조 설비를 세웠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수소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조 바이든 행정부에 보조금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일각에선 미국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자 셸이 수소 사업을 축소하기로 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셸은 승용차용 수소 연료 기술을 개발하는 부서를 통폐합해 상업용 대형 차량 에너지 사업에만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수소차가 전기 자동차에 비해 대중성을 잃었다는 판단에서다.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대한 셸의 노선이 바뀐 것은 올해 1월 신임 최고경영자(CEO)인 와엘 사완이 부임하면서다. 사완 CEO는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량을 늘려 쉘의 부가가치를 늘려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CEO의 장기적 비전에 따라 이 같은 구조조정을 시행한 것이다. 사완 CEO는 이번 개편과 관련해 “친환경 투자에서 후퇴한다기보다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술적 난관으로 탄소 감축 방안을 거둬들인 사례도 있다. 덴마크 세계 최대 장난감 제조 업체 레고는 탄소중립에 대한 기술적 한계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레고는 가공이 쉽고 내구성도 좋은 ABS 소재 플라스틱으로 장난감 블록의 80%를 제조해 왔다. 그러나 ABS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탄소배출량이 시민단체들로부터 비난받자 2020년 친환경 소재인 장레고 블록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레고는 향후 3년간 친환경 소재 개발에 4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후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방안 등을 연구했지만 지난 9월 이를 포기했다. 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 CEO는 “수백 가지 대체재를 연구했지만 비슷한 광택과 재질을 가진 대체재를 찾기 힘들었다”며 “재활용 페트(RPET)를 쓴 블록의 경우 오히려 기존 플라스틱 블록보다 탄소 배출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내년 중반까지 전기자동차 40만 대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전기차의 생산 목표를 제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전 세계 전기차 수요도 예상보다 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GM은 일본 혼다와 2027년부터 대중적 전기차를 만든다는 계획도 백지화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쉐보레 이쿼녹스 EV, 실버라도 EV 등 출시 예정인 전기차 모델의 생산을 수개월 연기하기로 했다.
미국의 또 다른 자동차업체 포드도 SK온과 합작 투자한 미국 켄터키주의 두 번째 배터리 공장 가동을 연기하는 등 당초 계획된 전기차 투자액 중 120억달러(약 16조원)를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테슬라가 시작한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생산능력 확충과 수익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넷제로 추진과 직결되는 에너지업계에서도 모종의 반란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 에너지업계 1~2위를 다투는 엑슨모빌과 셰브런은 지난달 연달아 대형 인수합병(M&A)을 발표했다. 엑슨모빌은 미 셰일업체 파이오니어를 595억달러에 인수하고, 셰브런은 석유개발업체 헤스를 530억달러에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이번 거래들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피크 오일’ 전망을 무색하게 하는 행보라는 분석이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위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환에 나서면서 ‘석유 시대는 머지않아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계속됐지만, 에너지 기업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빅딜을 성사시켰다.
유럽 에너지 대기업 셸은 저탄소·수소 사업부문을 축소하기로 했다. 수소 에너지 등 저탄소 에너지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셸은 저탄소 솔루션 부문(LCS) 인력의 15%를 감원하고, 수소 사업 규모를 축소할 예정이다. 가장 크게 개편되는 사업부는 수소 사업이다. 셸은 에너지 기업 중 수소 사업을 선도해왔다. 지난해 네덜란드에 유럽 최대 규모인 연간 200㎿(메가와트)짜리 전해조 설비를 세웠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수소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조 바이든 행정부에 보조금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일각에선 미국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자 셸이 수소 사업을 축소하기로 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셸은 승용차용 수소 연료 기술을 개발하는 부서를 통폐합해 상업용 대형 차량 에너지 사업에만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수소차가 전기 자동차에 비해 대중성을 잃었다는 판단에서다.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대한 셸의 노선이 바뀐 것은 올해 1월 신임 최고경영자(CEO)인 와엘 사완이 부임하면서다. 사완 CEO는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량을 늘려 쉘의 부가가치를 늘려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CEO의 장기적 비전에 따라 이 같은 구조조정을 시행한 것이다. 사완 CEO는 이번 개편과 관련해 “친환경 투자에서 후퇴한다기보다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술적 난관으로 탄소 감축 방안을 거둬들인 사례도 있다. 덴마크 세계 최대 장난감 제조 업체 레고는 탄소중립에 대한 기술적 한계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레고는 가공이 쉽고 내구성도 좋은 ABS 소재 플라스틱으로 장난감 블록의 80%를 제조해 왔다. 그러나 ABS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탄소배출량이 시민단체들로부터 비난받자 2020년 친환경 소재인 장레고 블록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레고는 향후 3년간 친환경 소재 개발에 4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후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방안 등을 연구했지만 지난 9월 이를 포기했다. 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 CEO는 “수백 가지 대체재를 연구했지만 비슷한 광택과 재질을 가진 대체재를 찾기 힘들었다”며 “재활용 페트(RPET)를 쓴 블록의 경우 오히려 기존 플라스틱 블록보다 탄소 배출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