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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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들이 진행한 여러 ‘스트레스 실험’에 따르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자식의 사망이라고 한다. 본래의 안정 상태로 되돌아가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양이 웬만한 다른 일과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고.

팔에 문신으로 새긴 ‘긍정 에너지(positive energy)’라는 모토처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표 ‘긍정맨’이었던 카밀로 비예가스(41·콜롬비아·사진)도 자식의 죽음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3년 전 생후 22개월 된 딸 미아를 뇌암으로 떠나보냈다. ‘멘털 게임’인 골프에서 딸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당시 PGA투어 통산 4승을 소유했던 비예가스는 한동안 우승은 없었지만 꾸준히 대회에 나섰던 선수다.

그런 그는 지난 시즌 26개 대회에서 12차례 커트 통과하는 데 그쳤다. 세계랭킹은 한때 654위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이 기간 비예가스는 딸의 이름을 딴 ‘미아의 기적’이라는 자선재단을 설립하며 주변과 슬픔을 나눴고 딸에게 바칠 우승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딸의 죽음 이후 약 3년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끝에 비예가스가 마침내 우승 트로피를 하늘에 있는 딸에게 선물했다. 비예가스는 13일(한국시간) 버뮤다 사우샘프턴의 포트 로열GC(파71·6828야드)에서 열린 PGA투어 버터필드 버뮤다 챔피언십(총상금 650만달러) 최종라운드에서 합계 24언더파 260타를 기록해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 8월 윈덤 챔피언십 이후 9년3개월 만에 수확한 투어 통산 5승. 우승 상금은 117만달러(약 15억5000만원)다. 페덱스컵 포인트 500점을 챙긴 그는 147위였던 페덱스컵 랭킹을 75위까지 끌어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올 시즌 11개 대회 중 7개 대회에서 커트를 당한 비예가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부진한 듯했다. 그러나 지난주 월드와이드 테크놀로지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깜짝 반등에 성공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며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우승을 확정하는 퍼트를 넣은 뒤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보며 딸을 향해 인사한 비예가스는 “골프는 내게 훌륭한 것을 정말 많이 주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걷어차기도 한다”며 “인생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아가 하늘에서 웃으며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미아는 오랜 투병 끝에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고 딸을 추모했다.

선두 알렉스 노렌(41·스웨덴)에게 1타 뒤진 2위에서 최종라운드를 출발한 비예가스는 전반에만 4타를 줄이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노렌이 9, 10번홀(이상 파4)에서 연속 보기로 흔들렸고, 비예가스는 후반에도 2타를 더 줄이면서 우승을 확정했다. 노렌은 1~3라운드 사흘 연속 선두를 달려 내친김에 ‘와이어 투 와이어’를 노렸으나 연속 보기 때문에 22언더파 262타 2위로 밀려났다.

노승열(32)은 이날 2타를 잃고 최종합계 5언더파 279타 공동 72위로 대회를 마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