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교수 "눈·관자놀이 주위 매일 극심한 통증…'군발두통'일 수도"
영화 ‘해리포터’ 주인공 역의 대니얼 래드클리프,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서 피비 역의 리사 쿠드로, 영화배우 겸 감독 벤 애플렉….

이들의 공통점은 극심한 군발두통 혹은 편두통을 앓아온 연기자라는 점이다. 두통에 따른 고통이 극심하다 보니 촬영 도중 응급실을 찾기도 하고 평소 많은 예방약을 복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요즘 같은 환절기에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군발두통은 한쪽 눈 주변이나 관자놀이 주위에 극심한 통증이 몇 주 혹은 몇 개월간 매일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눈물, 콧물, 식은땀, 결막 충혈 등도 동반된다. 대부분 환자가 병명도 모른 채 초기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는 사례가 많아 발병 후 첫 진단까지 걸린 시간이 평균 5.7년에 달한다.

이미지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사진)는 “흔히 머리가 지끈거리며 뒷목이 뻣뻣해지는 긴장형 두통의 경우 전체 인구의 80%가 겪을 정도로 흔한 증상이지만 군발두통, 만성 편두통 등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영역”이라며 “병원 방문을 통한 조기 진단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편두통이나 긴장형 두통은 스트레스로 인해 유발되기도 하지만 군발두통은 스트레스와는 전혀 상관없이 발생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지난 9월 서울 코엑스에서 세계 80여 개국, 2000여 명의 두통 전문가가 모인 가운데 열린 국제두통학회(IHC 2023)에서 아시아 최초로 ‘두통과학 연구자상’을 받았다. 또 이번 학회에서 두통 연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조세페 나피 교수 이름을 딴 ‘조세페 나피 군발두통 학술상’을 한국 최초로 수상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군발두통은 얼마나 아픈가.

“통증이 너무 심해 ‘자살 두통’으로 불린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지수를 0에서 10으로 표현할 경우 출산을 7로 정의했을 때 군발두통은 9에서 10 사이로 평가된다. 총이나 칼로 외상을 입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중년 여성 환자의 경우 실제 애 낳는 것보다 더 아팠다는 반응도 있었다. ‘눈으로 애를 낳는 기분’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군발두통 환자는 몇 명인가.

“전 세계 인구 1000명당 1명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진단이 내려진다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신경과 의사들이 겪는 두통을 조사했더니 100명당 1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사례도 있다.”

▷왜 환절기에 많이 발생하나.

“환절기라기보다 환자마다 특정 계절에 발병한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군발두통이 몸의 주기를 관장하는 뇌 시상하부와 관련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시상하부는 뇌의 생존 중추로 외부 온도 변화, 밤낮 변화 등을 감지해 몸속 체온을 유지하고 수면 주기를 만들며 식욕을 조절한다.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군발두통이 시작되면 시상하부가 정상과 다른 활성을 보인다. 군발기가 지나면 다시 정상 패턴으로 돌아간다.”

▷유전적 영향도 있나.

“그동안 유전적 영향이 없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유럽과 미국 연구에 따르면 유전 영향도 적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치료 방법에는 어떤 게 있나.

“통증을 줄이기 위한 급성기 치료와 예방 치료가 있다. 급성기 치료 시 일반 두통약은 거의 효과가 없고 산소치료와 트립탄 계열 약물치료, 머리에 주사를 놓는 후두신경 차단술 등이 쓰인다. 예방을 위해선 베라파밀, 스테로이드, 리튬 등 약물이 활용된다.”

▷산소치료는 얼마나 효과적인가.

“보통 병원에서 전문 장비를 통해 고유량의 산소를 흡입해야 한다. 뇌혈관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면서 통증이 생기는데, 고유량 산소를 흡입하면 혈관을 수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개인적인 가설로는 산소 흡입 시 코 안쪽에 인접한 부교감 신경절을 안정화시켜 통증을 줄이는 게 아닐까 한다. 다만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비용 부담이 크다.”

▷주로 20~40대 남성이 평생 앓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 ‘50대 완치설’도 나온다.

“예전엔 남성 환자 비율이 90%에 달했지만, 이제는 진단이 정확해지면서 여성 환자도 늘어 남성 비율이 60%로 낮아졌다는 조사가 있다. 직접 환자들을 조사해 보니 마지막 발병 연령대가 평균 50세였으나 실제 분포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술, 운동 등과는 어떤 연관이 있나.

“군발기 중에는 술을 마시면 군발두통이 바로 유발되는 게 특징일 정도로 연관이 깊다. 발병 시 반드시 술을 끊어야 한다. 군발두통은 생활습관병은 아니기 때문에 운동 여부와는 큰 관련이 없다. 다만 두통 발생 중 찬 공기를 과호흡하면 두통이 완화되는 환자들이 있다. 일종의 산소치료와 비슷한 개념이다.”

▷IHC 2023에선 어떤 치료법이 소개됐나.

“편두통 원인 물질인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와 결합해 통증을 줄이는 항 CGRP 치료제의 임상 결과와 함께 ‘뇌하수체 아데닐레이트 사이클라제 활성화 펩타이드(PACAP)’ 타깃 약물의 임상 결과가 소개됐다. 편두통 치료제 연구가 활발한 편인데 이 성과들이 군발두통 환자에게도 많이 활용되길 기대한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