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서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의 본사를 증축하는 공사 현장을 배경으로 한 시민이 벤치에 앉아있다. EPA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서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의 본사를 증축하는 공사 현장을 배경으로 한 시민이 벤치에 앉아있다. EPA
올해 0%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유럽에서 그나마 성장을 지탱하던 실업률 지표마저 악화하고 있다. 높은 실업수당 등 탄탄한 복지가 유럽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5월 5%였던 독일 실업률은 지난달 5.8%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영국 실업률은 3.8%에서 4.3%로 0.5%포인트 올랐다. 두 나라의 실업률 상승률은 모두 미국(0.3%포인트)보다 컸다.

노동시장의 불안 조짐은 전 세계적인 제조업과 무역 침체의 타격을 받고 있는 유럽 북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독일 자동차 부품사 콘티넨탈은 지난 13일 2025년까지 4억유로(약 5600억원)를 절감하기 일자리 수천 개를 감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1일 소프트웨어 자회사인 카리아드 인력을 2000명 감축한다고 밝혔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최근 중국 시장에서 BYD 등 토종 기업에 고전하며 재고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는 올해 전체 인원의 약 9%인 일자리 1만개를 감축할 계획이다. 지난달 머스크 수익은 전년 동월대비 95% 감소했다. 전세계적으로 컨테이너 수요가 줄고 운임이 크게 하락한 여파다.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14일(현지시간) 브란덴부르크문 앞을 오가고 있다. EPA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14일(현지시간) 브란덴부르크문 앞을 오가고 있다. EPA
낮은 실업률은 유럽이 고물가와 낮은 경제성장률로 시름하는 상황에서도 경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지난달 유로존(유로를 국가 통화로 쓰는 국가) 전체 실업률은 6.5%로 사상 최저치 수준을 기록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낮은 실업률이 유지된 배경으로 '고숙련 노동자를 구하기 힘든 상황'을 꼽고 있다. 독일에서는 베이비붐 세대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은퇴하면서 숙련 노동자 수요가 증가했다. 독일 뉘른베르크 노동시장 및 직업연구소의 엔조 베버 연구 책임자는 "일부 부문에서 노동력 부족이 극심해 많은 기업이 근로자를 붙잡아둘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지난해 10월 연 2.5%에서 지난달 4.5%까지 끌어올리자 그 효과가 점차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8월 실업률이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동시에 고용시장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고 한 바 있다. 이사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회 위원은 지난 5일 "경제 활동이 침체할수록 기업, 특히 중소기업이 노동력을 비축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가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실업률 증가는 저성장 또는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더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은 전 세계적으로도 실업수당 등 복지가 잘 갖춰진 만큼 재정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WSJ은 "유럽 경제의 오랜 골칫거리인 실업률이 급격히 증가하면 정부 재정에 더 큰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