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추함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비운의 장애화가 로트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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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재호의 미술관 속 해부학자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는 막대과자 상품을 가족, 친구, 연인끼리 선물하는 기념일이다. 처음엔 한 제과업체의 상품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길쭉한 과자를 자기 식대로 만든 뒤 포장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과 출발을 의미하는 숫자 1로만 구성된 11월 11일은 장애인들이 신체장애를 이겨내고 일어선다는 의미에서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2024년 장애인복지 예산을 전년 대비 10.1% 증가한 총 5조 13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것만 아니라 행여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제도부터 시행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겠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모두 알고 해소하기는 어렵겠지만, 정부와 함께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희망을 나눠야 할 시기다. 미술계에도 이와 연관이 있는 비운의 천재가 있었으니 바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다.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
프랑스 귀족 집안의 아이로 태어난 로트렉은 사냥과 스포츠, 그림을 좋아하는 등 다재다능해 ‘작은 보석’이라 불리는 귀공자였다. 하지만 자라면서 관절통과 골절에 계속 시달렸고, 결국 152㎝에서 키가 멈춰버렸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다른 가문에 나눠주지 않기 위해 근친결혼을 반복하다 보니 로트렉은 농축이골증(pyknodysostosis)이라는 골격계의 상염색체 열성 유전병을 갖게 됐다. 지금은 왜소증을 비롯해 특징적인 골격의 변화와 함께 카셉틴 케이(Catheptin K) 유전자의 변이로 진단되지만,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파리로 떠나 화가 르네 프랭스토 밑에서 공부했는데, 어릴 때부터 즐겨하던 승마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말을 자주 그렸다. 몽마르트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매춘부나 카바레의 댄서를 즐겨 그렸다. 당시 프랑스 몽마르트에는 ‘물랭루주’라는 최고의 사교장이 있었다. 로트렉은 그곳에서 캉캉춤을 추는 댄서를 그린 포스터 ‘물랭루주, 라 굴뤼(Moulin Rouge, La Goulue)’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당시 화가들의 고전적인 회화 기법과 달리 과감한 자르기,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 굵고 진한 선과 글자 등으로 눈에 띄는 포스터를 그렸다.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물랭루주를 선전하려는 기존의 포스터 달리, 로트렉은 댄서인 ‘라 굴뤼’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점을 맞췄다. 이후 인기 있는 포스터를 그리며 로트렉은 사교계의 스타가 되지만 작은 신장과 특이한 외모로 인해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는 술을 마시며 자신감과 활력을 찾곤 했지만 과도한 음주 끝에 술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손과 발이 움직여지지 않더니, 결국 37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함께 손을 잡고 일(1)어나기
로트렉의 포스터는 미술 작품이 광고 포스터로 활용되는 시초가 됐다는 점에서 현대 미술에 큰 의미를 남겼다. 그는 농축이골증로 인해 팔과 다리뼈가 잘 부러졌고 특히 손가락 끝마디 뼈의 뼈세포가 융해(acroosteolysis)됐다. 또 나이가 들면서 얼굴뼈도 변형돼 콧등은 볼록해지고 턱이 작아지는 증상을 겪으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트렉은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또한 아름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다”라고 말하며 일상 속 사람들의 매력을 작품 속에 표현했다.
아마 장애인인 자신을 편견이나 동정 어린 시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랬던 로트렉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을까. 또 자신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역동적으로 춤을 추는 댄서들의 모습에서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어느덧 한 해가 끝나가는 11월이지만 숫자 1의 의미를 되새겨 어려운 사람들의 손을 잡고 함께 일어나보자.
하지만 새로운 시작과 출발을 의미하는 숫자 1로만 구성된 11월 11일은 장애인들이 신체장애를 이겨내고 일어선다는 의미에서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2024년 장애인복지 예산을 전년 대비 10.1% 증가한 총 5조 13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것만 아니라 행여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제도부터 시행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겠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모두 알고 해소하기는 어렵겠지만, 정부와 함께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희망을 나눠야 할 시기다. 미술계에도 이와 연관이 있는 비운의 천재가 있었으니 바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다.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
프랑스 귀족 집안의 아이로 태어난 로트렉은 사냥과 스포츠, 그림을 좋아하는 등 다재다능해 ‘작은 보석’이라 불리는 귀공자였다. 하지만 자라면서 관절통과 골절에 계속 시달렸고, 결국 152㎝에서 키가 멈춰버렸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다른 가문에 나눠주지 않기 위해 근친결혼을 반복하다 보니 로트렉은 농축이골증(pyknodysostosis)이라는 골격계의 상염색체 열성 유전병을 갖게 됐다. 지금은 왜소증을 비롯해 특징적인 골격의 변화와 함께 카셉틴 케이(Catheptin K) 유전자의 변이로 진단되지만,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파리로 떠나 화가 르네 프랭스토 밑에서 공부했는데, 어릴 때부터 즐겨하던 승마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말을 자주 그렸다. 몽마르트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매춘부나 카바레의 댄서를 즐겨 그렸다. 당시 프랑스 몽마르트에는 ‘물랭루주’라는 최고의 사교장이 있었다. 로트렉은 그곳에서 캉캉춤을 추는 댄서를 그린 포스터 ‘물랭루주, 라 굴뤼(Moulin Rouge, La Goulue)’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당시 화가들의 고전적인 회화 기법과 달리 과감한 자르기,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 굵고 진한 선과 글자 등으로 눈에 띄는 포스터를 그렸다.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물랭루주를 선전하려는 기존의 포스터 달리, 로트렉은 댄서인 ‘라 굴뤼’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점을 맞췄다. 이후 인기 있는 포스터를 그리며 로트렉은 사교계의 스타가 되지만 작은 신장과 특이한 외모로 인해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는 술을 마시며 자신감과 활력을 찾곤 했지만 과도한 음주 끝에 술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손과 발이 움직여지지 않더니, 결국 37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함께 손을 잡고 일(1)어나기
로트렉의 포스터는 미술 작품이 광고 포스터로 활용되는 시초가 됐다는 점에서 현대 미술에 큰 의미를 남겼다. 그는 농축이골증로 인해 팔과 다리뼈가 잘 부러졌고 특히 손가락 끝마디 뼈의 뼈세포가 융해(acroosteolysis)됐다. 또 나이가 들면서 얼굴뼈도 변형돼 콧등은 볼록해지고 턱이 작아지는 증상을 겪으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트렉은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또한 아름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다”라고 말하며 일상 속 사람들의 매력을 작품 속에 표현했다.
아마 장애인인 자신을 편견이나 동정 어린 시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랬던 로트렉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을까. 또 자신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역동적으로 춤을 추는 댄서들의 모습에서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어느덧 한 해가 끝나가는 11월이지만 숫자 1의 의미를 되새겨 어려운 사람들의 손을 잡고 함께 일어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