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입시에 평생 운 다 썼다"…다시 파리로 간 고졸 출신 20대
학교 수업만으로 진도 따라가기 벅차다 느껴 …점점 불어 공부 소홀히 해
4년 전 부터 다시 공부 시작, 매일 지하 250층~지상 500층 오가는 기분
월세 75만원 7㎡짜리 하녀방에서 지내며 2024학년도 가을학기 입사 준비



전남 나주 출신 정성민 씨(26)는 지역 외고에서 불어를 전공했지만 학교 수업만으로 실력을 향상하기 어려웠다. 입시와 내신이 중요한 교실 분위기 속에서 정 씨는 점점 불어를 손에서 놓아야 했다.


그런 그가 다시 불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2019년 무렵이었다. 어릴적부터 역사와 미술을 좋아한 그는 프랑스에서 관련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정 씨는 2019년도에 유학 떠날 채비를 마쳤는데 때마침 영장이 나와 꿈을 잠시 접어야 했다. 정 씨는 “그때 왔으면 불에 타지 않은 노트르담 성당을 볼 수 있었다”고 푸념했다. 군 제대 후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어학 공부를 체계적으로 한 다음 유학길에 올랐다.

올해 1월 파리에 도착한 정 씨는 아직 어학원에서 언어를 배우며 외국인 전형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여행지로서의 파리와 삶의 터전이 된 파리는 다르다고 정 씨는 고백한다. 물가가 비싸고 500유로(한화 약 75만 원)에 달하는 월세를 감당하기도 빠듯하다. 비자 등 여러 행정 처리가 느려 답답한 부분이 많다. 정 씨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학을 와서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정 씨는 "여전히 불안하고 모호한 현실이지만 당장 눈 앞에 있는 대학 입시부터 잘 해내겠다"고 말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올해 1월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 중인 정성민(26)입니다. 아직 어학 공부를 하고 있고, 내년도 가을학기 학사 입학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일과를 소개해주세요.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어학원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오후 2시 정도에 수업 끝나면 바로 일하러 갔습니다. 잠시 한인 마트에서 고객 응대하고 상품 진열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일 마치고 집에 오면 저녁 9시쯤 됐습니다. 요새는 입시 일정이 다가와서 일을 안 하고 바로 도서관 가서 시험 공부하고 있습니다."
"외고입시에 평생 운 다 썼다"…다시 파리로 간 고졸 출신 20대
▶프랑스 대학에 입학하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나요?
"학사로 입학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가 쓰는 전형은 도시에 베르트(Dossier Vert)라는 전형입니다. 외국인이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학비 지원을 받는 제도입니다. 공인어학시험 델프(DELF) 중급 단계(B2) 이상인 성적이 최소 요건입니다."

▶입시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언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서류 전형 단계에서 제출하는 자기소개 및 지원동기서가 합격 당락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성적도 물론 제출합니다. 서류 합격을 하고 나면 면접을 봅니다.

파리 지역 13개 국립대학은 평준화가 돼 있는데, 학교별로 전문성이 뛰어난 분야가 각각 다릅니다. 파리 지역의 대학교는 지원자의 수가 상당하기 때문에 합격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희망하는 학교는 파리 1 대학(팡테옹-소르본)과 4 대학(파리-소르본)입니다. 제 관심사인 고고학, 예술학 등 인문학이 강점인 학교들입니다."

▶어떤 공부를 하고 싶나요?
"중학생 때부터 역사 덕후였습니다. 고고학과 예술사를 전공하고 싶습니다.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한국에선 순수 학문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쉽지 않고 주변 눈치도 많이 봐야 합니다.

군대 전역한 다음 미술품 전시 해설 관련 영상을 하나 봤습니다. 도슨트라는 직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을 듣다 보니까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았습니다. 예술과 역사적 자원이 많은 프랑스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역사 덕후로서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역사적 사건이나 장소가 있나요?
"프랑스에서 경험한 것 중에는 팡테옹 빅토르 위고 관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미제라블>의 작가입니다.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당했습니다. 팡테옹에는 빅토르 위고 말고도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등 프랑스 위인들이 안장돼 있습니다. 프랑스가 역사를 대표하는 위인과 명사를 기리는 방식이 멋있습니다.

클루니 중세 미술관도 사랑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품과 공예품이 많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흥미로운 전시를 만나볼 수 있는 곳입니다."
팡테옹. / 출처=Gettyimages
팡테옹. / 출처=Gettyimages
▶국내서도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데 파리까지 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 견해로는 국내에서의 순수 학문은 다른 학문과 비교하면 경쟁자는 많은데 그에 비해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밥벌이로 하기에 합당하냐 하면은 되게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한국에서 도슨트 또는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면 직업에 대한 열등감이 꽤 컸을 것 같아요.

아직 한국에선 대학 입학이 ‘진리’처럼 여겨지는데, 다른 일을 해보면서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의 권유로 마지못해 몇 군데 원서를 넣긴 했습니다. 신학과에 붙었는데 제 성향하고 맞지 않아서 안 갔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눈치를 덜 본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어느 정도 살 수 있는 정도 삶을 꾸려나가기에 부족함 없는 정도면 다들 만족해하며 사는 면이 있습니다."

▶불어는 프랑스에 와서 처음 배우기 시작했나요?
"아닙니다. 사실 고등학생 때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평생 누릴 운을 외고 입시에 다 썼습니다. 외고 지원할 때 전공하고 싶은 언어를 고르게 되거든요. 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했을 때였습니다. 프랑스 언어와 문화에 꽂혀서 불문과를 선택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나 역사 관련 책을 자주 접하면서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막상 입학하고 보니 학교는 제가 생각했던 외고의 모습과도 거리가 있었습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언어를 접했던 것 같아요. 동사 변형을 제대로 할 줄 몰랐습니다. 외고라고 해서 외국어에만 매달리지는 않았었거든요. 학생들 간 수준이 달라도 외고에서라면 다른 친구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공부하지 않을까 기대했었습니다.

근데 선생님들부터 입시 맞춤형 공부를 지도하셨습니다. 한 친구는 프랑스어를 잘하니까 1학년 때부터 대학 불문과에 가라고 떠밀고, 관심은 있어도 언어 실력이 떨어지는 친구들에게는 “불어 접고 다른 과목에 집중해서 입시를 잘하자, 나중에 배워도 늦지 않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어요."
출처=Gettyimages
출처=Gettyimages
▶내신과 수능 성적이 곧 학생들의 명함이 되는 치열한 환경에서 어떤 점이 제일 답답했나요?
"저도 의지가 한번 꺾이니까 프랑스어 공부를 어느 정도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주위 대부분의 친구가 소위 말하는 SKY·서성한(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의 줄임말)등 상위 대학을 목표로 하고 항상 그 정착지는 10대 대기업 같은 화이트칼라의 직종이었습니다. 각자가 가진 삶의 다양성을 점차 잃어간다는 게 속상했습니다.

마음을 따르는 삶을 진정으로 살고 싶어서 고등학교 졸업 후 홀로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늘 개척자 정신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싶다는 막연한 이상에 빠져 살았어요. 과연 무엇을 좋아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이런 생각을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야 제대로 해보기 시작했죠.

대학에 안 갔으니까 한창 캠퍼스 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이나 부모님 지인들이 요즘에 뭐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저를 대변할 수 있는 그런 말들이 없었습니다. 그 점이 가장 답답하고 불안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유학 생활 전까지는 어떻게 지냈나요?
"고등학교 졸업한 2017년부터 1년 동안 집에서 주로 지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양봉장에서 일을 도우며 생각 정리도 나름대로 해보고요.

그러다 2018년도 초에 발목 인대를 수술해서 입원했습니다. 회복 중에 불현듯 중2병스러운 고민이 사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대책은 없지만 우선 고민을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결심했습니다. 2018년도 말에 편의점, 식당 등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했습니다. 돈을 빨리 모아서 이듬해 파리로 오려고 했는데 영장이 나왔습니다. 그 무렵 뉴스에 노트르담 화재 소식이 나왔습니다. 제가 <레미제라블> 다음으로 좋아하는 소설이 <노트르담 드 파리>거든요. "조금 더 빨리 갔으면 성당을 볼 수 있었을 텐데"라며 후회했습니다.

군 생활은 2019년 7월에 시작했고 2021년 4월에 제대했습니다. 그리고 불어를 처음부터 제대로 공부한 다음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1년 반 동안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아테나 여신의 동상이 있는 프랑스 파리 '포흐트 도레' 분수. / 사진=본인 제공
아테나 여신의 동상이 있는 프랑스 파리 '포흐트 도레' 분수. / 사진=본인 제공
▶프랑스가 여행지로선 아름다운데 실제로 생활해보니까 어떤가요?
"아무래도 여행으로 왔을 때 하고 살러 왔을 때 하고 느끼는 무게감이 다르죠. 떠나올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짐을 겨우 싸놓고 부모님께 "떠나겠다" 선전포고한 다음 비행기에 타게 됐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온 만큼 기쁨이나 설렘보다는 잘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해서 버텨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매일 지하 250층부터 지상 500층까지 왔다 갔다 하는 기분입니다. 루브르, 클루니, 귀스타프 모로 등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멍 때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은 천국에 있는 느낌입니다. 전시품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두컴컴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우선 물가가 비싸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 저는 주택에 딸린 7㎡짜리 '하녀 방(하녀들에게 주로 내주던 작은 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 코딱지만 한 방의 월세는 500유로(한화 약 75만 원)입니다. 프랑스 학생들에게는 월세의 최대 50%까지 지원해주는 주택 보조금이 나와서 저도 신청했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또 항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더라고요. 부모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들이 생겼습니다."

▶기존 계획은 무엇이었나요?
"국립대학 부설 어학원에서 어학 공부를 하면서 입시 준비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아쉽게도 학교 측에서 저를 위한 자리가 없다고 입학 거부 통보를 했어요. 비자가 곧 만료되는 행정적인 문제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설 어학 기관에서 등록하게 됐습니다. 국립 어학원은 학기당 학비가 1~200만 원 내외인데 사설 기관 학비는 그보다 2~3배 이상 비쌉니다."

▶프랑스에 와서 자신이 바라는 모습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솔직히 여전히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미술사나 고고학 분야로 진로를 좁혔고, 그 안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주제도 나름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기대하고 원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불안하고 모호하더라도 한번 쯤 막연하게 상상해본 미래로 나아간다는 기대감은 있습니다."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도슨트(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와 큐레이터(박물·전시관 프로그램 기획자)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로서는 프랑스 문화도 좋지만, 기회가 된다면 북유럽과 아일랜드에 대한 역사적 사료를 발굴하고 싶습니다. 아일랜드는 자원이 풍부하고 고대 유물이 많습니다. 북유럽 같은 경우는 아직 룬 문자를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등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덜 된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