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버리고 보이스피싱 하부 조직에 가담해 쉽게 '검은돈' 만져
폭력·갈취는 옛말, '가성비' 좋은 대포통장에 눈 돌리는 조폭
조직폭력배(조폭)들이 물리적 힘을 과시해 돈을 갈취하던 시대는 옛말이다.

검경 집중 단속에 세가 약해진 사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하부 조직에 가담해 쉽게 '검은돈'을 만지는 등 사업 경로도 다양해진 모습이다.

15일 경남경찰청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될 대포통장을 모집, 유통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로 구속한 전북 지역 조폭 30대 A씨 등 9명이 이처럼 변화한 조폭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A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요식업 등을 목적으로 한 허위 법인을 세우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대포통장 70여개를 만든 뒤 이를 세탁자금 인출 조직에 넘긴 혐의를 받는다.

전북 군산과 익산에서 활동하는 이들 조폭은 허위 법인을 만들거나 하부 조직원들을 동원해 대포 통장을 수십 개 모집했다.

본부 격인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각 대포 통장에 입금된 범죄 피해금의 2%를 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포 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몰래 돈을 가로채는 일명 '누르기'로 돈을 나눠 갖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이 약 4개월 동안 세탁자금 인출 조직과 함께 챙긴 범죄 수익금이 약 6억원인 것으로 추정한다.

경남 경찰은 지난해에도 후배 조직원들이 포함된 대포 통장 모집 및 자금 세탁팀을 만들어 대포 통장을 개설, 유통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조폭 행동대장 30대 A씨 등 11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주식 리딩 사기' 조직의 자금을 대포 통장을 이용해 세탁해주며 수수료 명목으로 3%씩 총 40억원을 챙겼다.

지난해 부산 조폭 조직인 칠성파와 동방파도 이 같은 대포통장 모집 범죄에 가담했다가 동방파 두목은 구속되기도 했다.

폭력·갈취는 옛말, '가성비' 좋은 대포통장에 눈 돌리는 조폭
경찰은 조폭들이 이 같은 범죄에 가담하는 이유로 '가성비'를 꼽는다.

자존심을 버리고 보이스피싱 조직 밑에서 일하더라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허위 법인을 설립한 뒤 그 법인의 지점을 개설하는 식으로 대포 통장 여러 개를 만들기만 하면 돈이 생기는 구조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들이 대포 통장을 공급해줘야 세탁한 계좌로 돈을 입금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폭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적은 셈이다.

또 협박과 갈취 행위는 구속 수사가 원칙이지만 이런 경우는 대포 통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회피가 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통장만 공급해주면 일정 수익이 보장되다 보니 유흥업소 등을 관리하거나 서민을 겁박해야 하는 노력과 비교하면 가성비가 좋은 셈"이라며 "요즘은 조폭이라고 해도 각자도생해야 하다 보니 자존심보다 실리를 택하는 조폭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폭력·갈취는 옛말, '가성비' 좋은 대포통장에 눈 돌리는 조폭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