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미국 민주당 의원 12명은 주요 석유 기업에 ‘횡재세(windfall tax)’를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 급등으로 대규모 이익을 낸 석유 회사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두려는 취지였다.

한동안 의회에 계류돼 있던 이 법안은 8개월 만에 다시 공론화됐다. 작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고유가에 관한 불만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미국에서 횡재세는 아직 도입되지 않고 있다.

횡재세 입법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인 게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그보다 미국 역사가 ‘횡재세는 잘못된 세금’이란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게 더 큰 배경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큰 피해

106년 전 '전쟁 횡재세'에 큰코다친 美…"이건 잘못된 세금"
미국이 횡재세와 비슷한 ‘초과 이윤세’를 처음 부과한 건 1차 세계대전 때인 1917년이다.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생산하던 US스틸과 듀폰 등의 이익이 1000% 이상 급증한 때다. 미국이 공식 참전을 선언한 뒤 전쟁에 투입되는 미국 정부의 자금이 급증한 시점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 정치권에선 ‘군인 징병 외에 부와 소득의 징병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1917년 10월 미 정부는 일정 기준 이상의 초과 이윤을 내는 기업에 최대 60%의 누진세를 매기기로 했다. 1년 만에 70억달러(약 9조1000억원)의 세수를 거뒀다. 당시 연방정부 재정수입의 4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경제학자인 토머스 애덤스는 “소득 관련 세금이 생긴 뒤 미국 공공재정의 최대 혁명적 발전”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겼다. 전쟁 특수가 사라진 뒤 세금폭탄을 견디지 못한 기업이 하나둘씩 도산하기 시작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타격이 더 컸다. 결국 미 의회는 1921년 초과 이윤세를 폐지했다.

20년 가까이 자취를 감춘 횡재세는 2차 세계대전 때인 1940년 재등장했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으로 새로운 백만장자 집단이 생겨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 특수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기업 이익의 90%를 세금으로 거뒀다. 그러나 “90%의 세율은 지속 불가능하다”며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5년 사라졌다.

○석유파동 땐 소비자 부담만 가중

횡재세가 전시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기름값이 급등한 2차 오일쇼크 후에도 나왔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80년 ‘횡재 이윤세(windfall profit tax)’를 도입했다.

1980년 이전 인플레이션 지수와 연동해 적정가 이상으로 유가가 오를 때 세금을 매겼다. 유가 상승을 막는다는 취지로 기업의 초과이익이 아니라 기름값 자체에 세금을 추가로 부과했다. 소비자 부담만 늘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1980년대 후반기 유가가 안정되면서 세수도 급격히 줄었다. 적정가를 정하는 방식이 너무 복잡해 세무당국의 행정적 비용만 늘어났다.

더 큰 폐해는 미 정유회사의 경쟁력 약화였다. 횡재 이윤세가 미국 내 석유회사 제품에만 부과되자 미국 석유회사들은 미국 내 원유 판매를 줄였다. 횡재 이윤세를 내지 않는 해외 석유회사가 반사이익을 얻었다.

소비자들은 더 싼 수입 석유를 선택해 해외 의존도만 올라갔다. 1980년 3%이던 미국 내 수입유 비중은 8년 만에 13%로 상승했다. ‘완전히 실패한 세금’이란 비판이 확산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8년 횡재 이윤세를 없앴다.

○기업 투자 줄어 소비자 피해 커져

전문가들은 미국이 다시 횡재세를 도입하면 1980년대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재무장관 출신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횡재세 도입으로) 기업 수익성이 낮아지면 투자가 위축돼 우리의 목표와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단기적으로 정부 재정수입이 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석유 개발 감소로 이어져 기름값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고유가를 이유로 횡재세를 매기면 저유가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비판도 나온다. 엑슨모빌은 지난해 557억달러의 순이익을 거뒀지만 2020년 224억달러의 순손실을 냈다. 아제이 메로트라 노스웨스턴대 법학과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서 “횡재세가 정치적 위안과 도덕적 명분을 제공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조세 형평성만 해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