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에선 못 듣는 소리 "이런 견적은 내본 적이 없어서 안 돼요" [책마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나는 테슬라에서 인생 주행법을 배웠다
박규하 지음/비즈니스북스
320쪽|1만7000원
박규하 지음/비즈니스북스
320쪽|1만7000원
애플과 테슬라에는 신입사원 교육이 없다. 바로 업무에 투입한다. 상사의 구체적인 업무 지시도 없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실현해야 할 ‘목표’만 주어질 뿐이다. 모든 직원은 최고경영자(CEO)처럼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나는 테슬라에서 인생 주행법을 배웠다>는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한 한국인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저자 박규하는 ‘토종 국내파’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다. 예일대 MBA(경영학 석사) 유학을 계기로 애플과 테슬라 본사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미국에서 “누가 시켜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능동적인 업무 자세를 배웠다”고 말한다.
애플에서 공급망을 관리하는 ‘글로벌 서플라이 매니저(GSM)’로 일할 때였다. 일본 업체 한 곳에서만 공급받는 부품이 하나 있었다. 그는 신규 공급처를 발굴할 필요를 느꼈다. 구매 전략을 짜고, 사내 엔지니어들의 동의를 구하고, 부품 성능을 검증하는 제법 성가신 일을 처리한 끝에 그가 발굴한 업체는 애플의 정식 부품 공급사가 됐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러한 제안과 실행 계획은 상사의 지시로 내려오지 않는다. 해당 부품의 공급 책임자가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추진하는 것이다. 내가 MBA에서 익힌 지식과 현장에서의 경험을 마음껏 활용하듯이, 구매팀의 직원들도 각기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날마다 CEO의 마인드로 고군분투한다.” 그가 배터리 공급망 관리자로 일했던 테슬라는 애플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애플은 이미 아이폰 등을 오랫동안 생산해 온 만큼 업무 체계가 잘 잡혀 있었다. 테슬라는 모든 게 도전이었다. 새로운 유형의 상품인 전기차를 전 세계에 팔아야 했고, 네바다 사막에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지어야 했다. 그만큼 더 역동적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강조하는 ‘제1원칙 사고’는 테슬라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의 뼈대가 된다.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기존의 관습이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근본적인 원리부터 다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남들보다 조금만 더 잘하자’가 아니라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자’라는 마인드로 일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한국 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비교하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국에선 CEO나 임원이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하면 실무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새 없이 그대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그룹이라는 이유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계열사 부품을 쓰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일할 때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의견을 내면 관련 부서에서 ‘이 디자인은 설계를 해보지 않아서 안 될 것 같아요’, ‘이런 종류의 견적은 내본 적이 없어서 가격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같은 ‘안 되는 이유’를 들이밀며 반대할 때가 많았다고 말한다.
미국 직장 생활이 다 좋은 건 아니다. '번아웃'을 겪을 위험이 크다. 언제 어떻게 일하든 터치를 안 하지만, 그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유롭게 일하는 분위기가 좋기도 하지만 일과 삶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기도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번아웃이 찾아온다”며 “본인이 능동적으로 워라벨을 설계할 자신이 없다면 한국의 사원증 태그 문화가 더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 유학이나 취직을 꿈꾸는 사람들, 실리콘밸리 기업이 일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은 기업인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나는 테슬라에서 인생 주행법을 배웠다>는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한 한국인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저자 박규하는 ‘토종 국내파’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다. 예일대 MBA(경영학 석사) 유학을 계기로 애플과 테슬라 본사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미국에서 “누가 시켜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능동적인 업무 자세를 배웠다”고 말한다.
애플에서 공급망을 관리하는 ‘글로벌 서플라이 매니저(GSM)’로 일할 때였다. 일본 업체 한 곳에서만 공급받는 부품이 하나 있었다. 그는 신규 공급처를 발굴할 필요를 느꼈다. 구매 전략을 짜고, 사내 엔지니어들의 동의를 구하고, 부품 성능을 검증하는 제법 성가신 일을 처리한 끝에 그가 발굴한 업체는 애플의 정식 부품 공급사가 됐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러한 제안과 실행 계획은 상사의 지시로 내려오지 않는다. 해당 부품의 공급 책임자가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추진하는 것이다. 내가 MBA에서 익힌 지식과 현장에서의 경험을 마음껏 활용하듯이, 구매팀의 직원들도 각기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날마다 CEO의 마인드로 고군분투한다.” 그가 배터리 공급망 관리자로 일했던 테슬라는 애플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애플은 이미 아이폰 등을 오랫동안 생산해 온 만큼 업무 체계가 잘 잡혀 있었다. 테슬라는 모든 게 도전이었다. 새로운 유형의 상품인 전기차를 전 세계에 팔아야 했고, 네바다 사막에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지어야 했다. 그만큼 더 역동적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강조하는 ‘제1원칙 사고’는 테슬라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의 뼈대가 된다.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기존의 관습이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근본적인 원리부터 다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남들보다 조금만 더 잘하자’가 아니라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자’라는 마인드로 일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한국 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비교하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국에선 CEO나 임원이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하면 실무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새 없이 그대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그룹이라는 이유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계열사 부품을 쓰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일할 때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의견을 내면 관련 부서에서 ‘이 디자인은 설계를 해보지 않아서 안 될 것 같아요’, ‘이런 종류의 견적은 내본 적이 없어서 가격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같은 ‘안 되는 이유’를 들이밀며 반대할 때가 많았다고 말한다.
미국 직장 생활이 다 좋은 건 아니다. '번아웃'을 겪을 위험이 크다. 언제 어떻게 일하든 터치를 안 하지만, 그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유롭게 일하는 분위기가 좋기도 하지만 일과 삶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기도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번아웃이 찾아온다”며 “본인이 능동적으로 워라벨을 설계할 자신이 없다면 한국의 사원증 태그 문화가 더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 유학이나 취직을 꿈꾸는 사람들, 실리콘밸리 기업이 일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은 기업인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