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원, 5년여 재판 끝에 정부 책임 인정…소송 미참여 시민 45만명
지진 겪은 포항시민에 최대 300만원 배상 판결…줄소송 예고(종합)
2017년과 2018년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해 포항시민들이 정부와 기업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관련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포항지진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법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여서 관심을 끈다.

포항에서는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 지진, 2018년 2월 11일 규모 4.6 지진이 발생해 많은 주민이 다치고 건물이 무너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1명이 숨지고 117명이 다치는 인명피해가 났고 2천여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포항시가 피해구제를 위해 접수한 결과 11만여건의 시설 피해가 확인되는 등 한반도 지진재난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기록했다.

초창기에는 지진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의 문제 제기에 따라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한 '정부조사연구단'은 1년여간 조사 끝에 2019년 3월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지진이라고 밝혔다.

포항지열발전소는 한국에서 지열발전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2010년 'MW(메가와트)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이라는 이름의 정부 지원 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됐다.

넥스지오가 사업 주관기관으로 발전소를 소유하고 포스코, 이노지오테크놀로지, 지질자원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서울대 등이 연구에 참여했다.

정부 연구개발 사업을 관리하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전담기관이다.

조사단은 지열발전을 위해 땅속 깊이 들어가는 파이프라인을 깔아 물을 주입하고 빼는 작업을 반복했고, 이런 작업이 단층을 자극해 지진을 촉발했다고 밝혔다.

이에 포항지진 직후 결성된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는 2018년 10월 1·2차 소송인단 1천227명을 꾸려 대한민국과 포스코, 에너지기술평가원, 지질자원연구원, 서울대 산학협력단 등을 상대로 "1인당 1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은 지열발전이 지진 사이에 인과 관계가 성립하는지를 핵심 안건으로 다뤘다.

재판부는 정부조사연구단 결과, 감사원 감사 결과 등을 살핀 뒤 산업부나 보조참가인 에너지기술평가원 등의 부작위로 인한 주의의무위반으로 국가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포스코나 지질자원연구원,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공동불법행위책임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지진 당시 포항에 주소지가 있던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1차 지진과 2차 지진을 모두 겪었는지에 따라 200만∼3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약 5만명 원고의 청구금액은 4만2천955원부터 2천만원까지 다양한 상태다.

재판부는 청구 금액이 200만∼300만원에 미치지 못한 경우 청구 금액으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전체 인용금액은 309억원이고 지연손해금까지 고려하면 약 400억원이다.

1심 소송 결과가 나왔지만 범대본이 항소할 뜻을 밝혀 소송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일부 승소이긴 하지만 정신적 피해로 200만∼3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포항시민 45만명의 소송 제기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시민은 16일 "민사소송에서 이겼다는 결과가 나왔으니 가족과 상의해서 소송을 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항지진과 관련한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정부조사연구단의 발표 때부터 5년으로 2024년 3월 20일까지다.

포항시는 자체 법률상담을 진행하는 등 피해 주민 편의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나갈 계획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법원이 포항지진의 원인에 대해 지열발전 사업에 의한 촉발 지진임을 인정한 첫 판결로서 큰 의미가 있다"며 "지진으로 큰 고통을 겪은 포항시민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는 판단으로 재판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