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도가 붙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한국은행이 의미 있는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AI와 노동시장 변화’라는 제목 그대로 최근 급성장해온 AI가 일자리에 어떤 변수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이냐다. 직업별 AI노출지수로 분석한 결과 보수적으로 봐도 국내 일자리 중 341만 개(12%)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핵심이다. 의사, 화공 기술자, 발전장치 조작원, 금속재료 기술자, 기관사, 회계사 등이 대표적이다. 고학력·고소득 근로자일수록 더 쉽게 AI로 대체된다는 대목이 놀랍지만 수긍도 된다. 산업용 로봇·소프트웨어 등 이미 보편화한 기술이 저학력·중간소득 그룹에 치명타를 준 것과 비교된다.

이런 종류의 연구물은 학생들과 각급 학교가 먼저 눈여겨볼 만하다. 인적자원 확보와 제조·서비스 혁신에 몰두하는 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자리정책을 주도하는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정부 부처도 진지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 이후 포드시스템, 컨베이어시스템, 기계화·컴퓨터화 등을 거치며 일자리와 직업의 세계는 놀랍게 변해왔다. 이제 AI 혁명으로 또 한 번 비약할 것이다. 전통적인 관광·교육·여가·금융 부문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의료·법률·지식재산 분야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미용·요양·반려동물 같은 새 분야도 마찬가지다. 한국 서비스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62.5%(2021년)에 달하지만 영국(81%) 미국(78%) 등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관점에서만 보면 AI 혁명은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신기술은 새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혁신한다. 대대적인 규제 혁파로 서비스산업에서 새 일자리가 많이 생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산업혁명 직후 러다이트운동(기계파괴) 같은 막연한 ‘AI 포비아’는 금물이다. 12년째 그대로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에도 속도를 내야 하고 민관 합동의 서비스산업발전TF도 실행안을 내놔야 한다. AI 기술을 잘 활용하면 신(新)서비스산업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