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까지 붉게 물들이는…연말엔, 너와인사
선택이란 늘 어렵다. 골라야 할 후보가 많을 땐 밀려오는 두통에 급기야 선택을 포기할 때조차 있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정답을 알려줄 전문가가 곁에 있다면….’ 와인의 세계에 발을 디딘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어떤 와인을 택할지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격은 기본이고, 생산지와 포도 품종, 와이너리(와인 생산자)의 공력까지 감안해야 하니 ‘와알못’(와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말 모임이 많아지는 요즘, 국내 정상급 ‘와인 주치의’ 보틀벙커의 전문가들이 선택 장애에 빠진 이들을 위한 와인 목록을 준비했다.

오스틴 호프 카베르네 소비뇽(미국)

2009년 ‘올해의 와인 메이커’로 선정된 오스틴 호프의 역작이다. 호프는 나파 밸리의 파소 로블레스 지역에서 자란 까다로운 카베르네 소비뇽(카쇼)을 섬세하게 조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산자로 꼽힌다. 그는 나파 밸리의 간판 스타인 와그너 패밀리로부터 와인 제조법을 전수받았다. 척 와그너가 이끄는 와그너 패밀리는 1970년대에 케이머스라는 브랜드로 ‘나파의 카쇼’를 세상에 알렸다. 보틀벙커는 이런 의미를 담아 오스틴 호프 카베르네 소비뇽을 가르침을 준 스승에게 선물하기 좋은 와인으로 추천했다. 카쇼 특유의 다크 루비 컬러를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선한 블루베리, 볶은 커피의 향에 코코아와 말린 허브의 플레이버(풍미)까지 더했다. 육류 요리, 파스타, 단단한 치즈 요리와 어울린다.

자플랭 주브레 샹베르탱 비에이 비뉴(프랑스)

부르고뉴의 도멘(와인 양조장) 중에서 자플랭만큼 가성비 좋은 피노 누아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부르고뉴의 가장 큰 넓은 피노 누아 산지인 주브레 샹베르탱에서 자란 오래된 포도 나무(비에이 비뉴)만 엄선해 제조했다. 8세기 세워진 성당 동굴의 자플랭 와인 셀러는 현재까지 사용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2004년 부르고뉴 유수의 도멘에서 활동했던 와인 메이커 마리네트 가르니에가 합류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응축된 블랙 커런트의 과실 향과 부드럽고 고운 타닌, 마지막에 느껴지는 불에 그을린 나무 느낌의 향이 인상적인 레드 와인이다. 양고기 등 구운 육류 요리, 숙성된 치즈와 잘 어울린다.

샤또 레오빌 푸아페레 2018(프랑스)

푸아페레는 프랑스 메독 지역의 ‘레오빌 삼총사’ 중 하나다. 라스카스, 바르통과 함께 레오빌 지역에서 나오는 엄선된 포도로 와인을 주조한다. 2018 빈티지는 지난해 세계적 와인 잡지인 와인스펙터로부터 ‘글로벌 톱7 와인’에 뽑혔다. 푸아페레의 명성은 와인 평론계의 구루로 불리는 로버트 파커가 2009년 빈티지에 100점 만점을 주면서 확인된 바 있다. 1979년부터 디디에 퀴블리에가 운영하는 푸아페레는 다른 레오빌 삼총사처럼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요 품종으로 삼아 다양한 맛의 변주를 만들어내는 장인이다. 양조 설비를 최신화하고 와이너리의 전체적인 양조 방식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 빈티지는 짙은 보라색을 띠며 그을린 오크, 드라이 허브, 흙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다. 미디엄 산도에 보디감이 묵직하다. 검붉은 과실과 말린 가죽, 감초, 허브 향에 제비꽃, 바닐라, 오크, 민트 등의 풍미가 어우러져 독특한 향을 자아낸다.

힐 패밀리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미국)

심장까지 붉게 물들이는…연말엔, 너와인사
힐 패밀리는 연간 1만4000케이스의 적은 수량만 한정 생산하는 와이너리다. 4대째 캘리포니아에서 농사를 짓다가 1980년대부터 와이너리를 이어 오고 있다. 최근엔 컬트 와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진한 카시스와 커런트 향이 도드라진다. 바닐라와 코코아, 잘 여문 블랙베리의 향이 어우러진다. 입 안에서는 실크와 같은 질감과 단단한 타닌감이 느껴진다. 신선한 과일 향이 돋보인다.

몬트레소르 발폴리첼라 델라 리파소(이탈리아)

세계 최대 와인 경진 대회인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에서 은메달을 받은 최고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와인으로 불린다.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전통적인 양조법에 따라 포도를 비교적 늦게 수확한 뒤 이듬해 2월까지 건조한다. 이후 4개월간 스테인리스 통에서 발효시킨 뒤 오크 배럴에서 3년간 숙성을 거친다. 와인은 진한 루비 레드 컬러에 감초, 블랙베리 등 스파이시한 허브 향이 느껴진다. 끈기 있는 타닌 성분이 육류 요리와 잘 어우러진다.

샤또 베이슈벨 2017·샤또 린쉬 바주 2017(프랑스)

베이슈벨은 ‘작은 베르사유 궁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하는 샤또다. 16세기 베이슈벨은 프랑스 해군 제독인 에페르농 공작 소유의 성이었는데, 인근 지롱드강의 배들이 성을 지날 때 “돛을 내려라(Baisse-Voile)”고 외치며 공작에게 경의를 표시했다는 유래가 있다. 베이슈벨은 자갈이 섞인 포도밭으로 배수가 뛰어나 완벽한 카베르네 소비뇽 제품을 생산하기에 적합하다. 잘 익은 블랙베리류의 산미와 타닌이 조화를 이룬다. 밝은 루비 빛을 띠며 젖은 흙냄새, 담배, 과일 향, 향신료, 허브향이 어우러진다. 부드러운 산미로 목 넘김이 좋다. 육류 요리와 잘 어울리며, 한식 중에는 생갈비 구이와 궁합이 좋다.

샤또 린쉬 바주 소유주였던 장 미셸 카즈는 로버트 파커로부터 상당한 찬사를 받으며 자신의 와인뿐 아니라 프랑스 보르도의 모든 와인을 열정적으로 홍보하는 인물이었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장 샤를 카즈가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다.

보틀벙커가 추천한 와인 들고…아르떼와 건배 하실래요
내달부터 크리스마스·신년 선물 이벤트 진행

심장까지 붉게 물들이는…연말엔, 너와인사
와인은 ‘예술을 위한 술’이다. 오랜 번뇌와 고통 끝에 탄생하는 걸작들처럼 와인 역시 긴 인내와 끈기를 요하는 창작의 결과이기 때문일까.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고,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했다. 헤밍웨이는 ‘샤또 마고’를 열렬히 사랑한 나머지 손녀 이름을 ‘마고 헤밍웨이’로 지었을 정도다. 앤디 워홀은 소문난 ‘돔 페리뇽’ 애호가였고, 프랜시스 베이컨은 매일 밤 런던 거리를 배회하며 굴과 샴페인을 잔뜩 마신 뒤 새벽녘마다 그림을 그리기로 유명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예술가 곁엔 영감을 더해줄 와인이 존재했다. 세상에 수많은 예술가의 사연만큼이나 와인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르떼에선 다음달 12월의 송년 와인을 시작으로 회원들에게 다양한 와인과 샴페인을 매달 선물한다.

첫 이벤트는 오스틴 호프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10병)과 자플랭 주브레 샹베르탱 비에이 비뉴 2019(15병)이다. 11월 16일 오후 6시부터 12월 3일 밤 12시까지 아르떼 홈페이지 상단 ‘EVENT’ 섹션에 들어가 응모할 수 있다. 아르떼에 회원 가입 후 댓글로 기대평을 작성하면 된다. 아르떼는 12월 4일 사이트 내 공지사항과 문자메시지로 25명의 당첨자를 발표한다. 당첨자는 12월 말까지 보틀벙커 서울역점에서 수령할 수 있다.

하헌형/김보라 기자 hhh@hankyung.com